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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와 목금

은혜 갚을 뻔한 불돌이

망허촌에 있는 망허산 뒤쪽에는 폐사지가 하나 있다. 산 뒤는 북향이라서 마을이 없는데 절이 어쩌다 그런 곳에 세워졌던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이 안 찾을 곳에 절을 세워놓았으니 망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는 말들을 하곤 했다.

그래도 과거에는 꽤나 번창했던 절이 아닐까 싶었다. 다른 건물은 다 무너졌지만 대웅전은 허물어지긴 했어도 아직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다. 안에 있어야 할 본존불은 사라졌지만.

대웅전 앞에는 삼층 석탑이 조금 허물어졌지만 그래도 대충 모양새는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종각이 있는데, 종도 아직 걸려 있었다. 종에 금이 가서 쳐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지 않을 것이었는데, 그나마 칠 수도 없었다. 종을 치는 당목(撞木)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누군가 집어가 절굿공이를 만들었거나, 땔감으로 사용한 모양이었다.

대웅전은 지붕이 반쯤 무너져 비가 오면 줄줄 새곤 했지만 그래도 나머지 반은 비를 가릴 만큼은 되어 누군가가 비 안 맞는 곳으로 제단을 옮겨 놓았다. 때로 길을 잃은 나그네가 하룻밤을 피해가기도 했다.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이기도 했는데, 백이와 목금은 그 무리에 끼진 않았다. 절까지 가려면 아무튼 망허산 능선을 넘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만을 맞이한 오늘, 두 소녀는 손을 잡고 능선을 넘어 폐사지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백이는 한쪽 팔에 바구니를 끼고 있었는데, 안에는 불돌이가 들어있었다. 기온도 따뜻해져서 불돌이도 부쩍 밖으로 나가고 싶어 했기에 데리고 나온 것이다. 불돌이는 불을 다스리는 양수지조(陽燧之鳥)라는 신조였다.

“목금아, 불돌이가 자꾸 나오고 싶어하는 것 같아. 옆에서 걸릴까?”

“여긴 사람도 안 다니는 곳이니 그렇게 하지, 뭐.”

목금도 찬성해서 백이는 불돌이를 바구니에서 꺼내 내려놓았다. 불돌이는 오랜만의 바깥 공기에 흥분한 듯이 날개를 퍼덕이며 두 소녀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가만, 그럼 나도 초록이를 풀어놓을까?”

백이는 초록색 팔찌를 탁 건드렸다. 팔찌가 스르르 풀리더니 초록색 뱀으로 바뀌었다. 초록이는 백이의 삼시충이 변해서 된 영물이다. 초록이와 불돌이가 장난을 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불돌이가 점점 몸을 공중에 띄웠다.

“어? 불돌이가 이제 날 수 있나 봐.”

“아직은 잘 안되는 것 같은데? 하지만 곧 날겠다. 멋지네.”

목금과 두 소녀가 떠드는 사이에 어느덧 폐사지에 도착했다. 백이가 폐사지를 깡충거리며 뛰어다니면서 말했다.

“아주 오래된 절인가 봐. 봐봐, 여기 종도 있어.”

아주 큰 종은 아니었지만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종이었다. 천판(종 윗부분)에는 용이 앞발을 드러내고 종을 꽉 움켜쥐고 있고 용 옆에는 퉁소처럼 보이는 음관이 솟아올라 있었다.

“와, 용이다!”

포뢰 (AI 생성 이미지)


백이가 신기한 듯이 바라보았다. 목금이 설명하듯이 말했다.

“맞아. 저 용을 포뢰(蒲牢)라고 부르는데, 원래 바닷가에 사는 용이래. 용에게 아홉 자식이 있는데 그중 셋째라고 해.”

“하필 종 위에 용을 조각한 이유가 뭐야?”

“포뢰는 고래를 무서워한대. 그래서 고래가 치받으면 큰 소리로 운다는 거야. 종을 치는 당목을 고래 모양으로 만들어서 포뢰가 울게 하는 거래. 그러면 종소리가 더 크게 울릴 수 있다는 거지.”

불돌이와 초록이도 이야기가 재밌었는지 옆에 와서 목금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럼 빨리 가자. 이러다 돌아올 때는 날 저물겠다.”

백이와 목금은 다시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두 소녀는 오늘 산 너머에 있는 정 진사네 논을 살피러 가는 중이었다. 본래 돌쇠가 할 일이었지만 하필 고뿔이 심하게 걸려서 도저히 움직이질 못하는 통에 백이가 가보기로 한 것이다. 정 진사는 시회에 참석해야 하는 통에 몸을 뺄 수가 없었다. 마님과 삼월이는 시회에 보낼 음식 장만이 바빴다. 아무튼 주인집에서 살피지 않으면 농사가 어찌 될지 모른다고 누군가는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백이가 가겠다고 한 것이다. 이제 다 큰 처녀나 마찬가지인데 어찌 보내겠냐 싶었는데, 목금과 함께 가면 된다고 해서 어렵게 허락을 했다.

도착해보니 모내기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올해는 때를 마쳐 비도 잘 내려 물 걱정이 없었고 모판의 모도 싱싱하게 잘 자라 있어서 문제가 없었다. 주인집에서 아가씨가 왔다 하여 간식거리도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보릿고개라 얻어먹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보리 농사도 올해는 풍년이라 걱정 없이 넘겼다고들 좋아했다.

오말 신초(오후 3시경)에는 떠나야 해가 지기 전에 집에 돌아갈 수 있어 일어나려 했는데, 새참 시간이니 국수 한 그릇은 먹고 가라고 붙잡는 통에다가 노래 잘한다는 함평댁이 내지르는 소리가 그럴싸해서 그걸 다 듣다가 그만 좀 늦게 일어나고 말았다.

한참 산을 오르는 중이었는데 까치가 다급하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깍깍깍깍!”

“무슨 일이 있나?”

백이와 목금이 살피러 가보자 까치 두 마리가 급하게 날개짓을 하며 큰 나무 주위를 날고 있었다. 백이가 나무 위를 살피며 말했다.

“왜 저러는 거야?”

“아, 둥지로 구렁이가 올라가고 있어!”

커다란 구렁이가 까치 둥지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둥지에는 까치 새끼들이 공포에 질려 입을 딱딱 벌리고 있었다.

“새끼들을 먹어치우려나 봐, 어떡해!”

목금은 바로 돌을 들어서 있는 힘껏 구렁이를 향해 던졌다. 구렁이 머리통에 정확하게 맞아서 구렁이가 툭 떨어졌다. 구렁이는 하필 뾰족하게 부러져있던 나무 그루터기에 몸이 푹 꽂히는 바람에 발버둥을 치다가 금방 죽고 말았다.

“죽었어. 어서 가자.”

죽은 구렁이가 더 무서워서 두 소녀는 까치들은 살펴보지도 않고 바로 뛰어갔다. 한참을 뛰어서 두근거리는 심장이 좀 진정이 되었는데, 더 큰 일이 생겼다.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마을 쪽 망허산이면 눈 감고도 길을 찾을 텐데, 능선 너머로는 잘 오지 않아서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길을 더듬더듬 찾다가 그만 해까지 저물고 말았다. 북쪽인 터라 해도 일찍 저물었다.

“어, 어쩌지? 나 너무 무서워.”

불돌이가 빛을 내서 그나마 발밑은 볼 수 있었는데, 오늘따라 구름이 많아 달빛도 없었다.

“아, 길 찾았어. 저기로 가면 폐사지가 있을 거야. 오늘 밤은 저기서 자야겠다.”

“괜찮을까?”

“구름이 좀 끼긴 했어도 비는 안 올 것 같으니까 괜찮을 거야.”

정 진사는 늦어지면 자고 오라고 했기 때문에 오늘 안 들어간다고 사람들을 보내 찾으러 오지 않을 것이어서, 허물어진 대웅전에서 하루 신세를 지는 것 말고는 대안이 없었다. 백이가 길게 한숨을 쉬며 목금을 따라갔다.

“그래도 너랑 자니까 좋다.”

산속의 밤은 춥다. 이불도 없어서 백이와 목금은 딱 붙어서 서로의 체온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초록이가 땔감을 모아오고 불돌이가 불을 붙여서 조금이나마 온도를 높일 수 있었다.

목금은 자다가 답답해서 눈을 뜨고 말았다. 백이가 휘감아서 그런 줄 알고

“백이야, 좀...”

이라고 말하는데 백이의 몸이 너무 차가웠다.

“이, 이게 뭐야!”

목금이 화들짝 놀랐다. 구렁이가 목금의 몸을 칭칭 감고 있었다. 살펴보니 얼마나 큰 구렁이인지 백이도 그렇게 휘감았는데, 백이는 벌써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이, 이, 풀어줘!”

그러자 구렁이가 목금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오늘 너희가 죽인 구렁이의 아내다. 너희가 내 남편을 죽였으니 너희도 죽이겠다.”

“뭐? 구렁이를 죽인 건 나야. 그러니까 백이는 풀어줘.”

“어림도 없지. 너희 둘은 한 패거리니까 풀어줄 수 없다.”

“백이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왜 애꿎은 사람을 죽이려고 하니! 그러다 천벌 받는다!”

그 말에 구렁이가 움찔했다.

“천벌을 받는다고? 그럴지도 모르겠네. 좋다. 그럼 대신 너희가 살 수 있는 조건을 걸어주겠다. 절의 종이 해 뜨기 전에 세 번 울린다면 너희를 풀어주겠다.”

“절의 종이 저절로 울리는 것도 아니고 그게 무슨 조건이야! 그냥 죽이려고 하는 거지!”

“흥, 조건은 걸었다. 해 뜰 때까지 생명이 연장된 거나 감사해라.”

“종소리가 세 번 울리는 게 중요한 거야?”

“그렇다. 나는 원래 수련을 하고 있던 이무기다. 종소리를 들으며 도를 닦고 있었는데 9997번 들었을 때 전쟁이 나서 이 절이 망해버리고 말았다. 세 번만 더 들으면 승천할 수 있었는데 종은 더 이상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렇게 오백 년은 지난 것 같구나.”

구렁이가 말하는 동안 목금은 초록이와 불돌이가 어딨는지 열심히 찾았다. 불돌이는 구렁이가 들어오면서 한 대 때려 기절시킨 상태였다. 초록이는 어디 있는지 보이질 않았다. 목금이라 해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초록이는 불돌이가 기절했을 때 불돌이를 끌고 밖으로 나와 구렁이의 말을 듣고 있었다. 구렁이가 너무 커서 초록이가 상대할 수는 없었다. 불돌이를 깨웠는데, 불돌이도 이무기라는 걸 알고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초록이가 말했다.

“종을 쳐서 소리를 내야 해. 종 있는데로 가자.”

(AI 생성 이미지)


둘은 종 있는 곳에 왔지만 종이 높은데 걸려 있어서 닿지가 않았다. 불돌이가 있는 힘껏 날개짓을 해서 종에 머리를 박았는데, 깨진 종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까치 부모도 날아와 종에 머리를 부딪쳤는데, 머리에서 피만 나왔지 소리는 나지 않았다. 까치들이 분하다는 듯이 깍깍 울었다. 불돌이와 초록이도 어쩔 줄 몰라하며 엉엉 울고 말았다. 이렇게 모두 울고 있는데 갑자기 묵직한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구나, 무슨 일이냐?”

포뢰였다! 종판 위에 자리 잡은 포뢰가 입을 연 것이다.

“이 종은 더 이상 울 수가 없다. 헛된 짓들 하지 말고 목숨을 아껴라.”

초록이가 사정을 했다.

“세 번만, 세 번만 종소리를 내주세요. 안 그러면 저희 주인님이 구렁이 이무기한테 죽어요.”

포뢰가 깊은 고뇌에 찬 소리를 냈다.

“내가 종소리를 울릴 수는 있지만 그러면 이 종이 완전히 깨질 것이다. 그러면 나도 죽을 것이고...”

초록이는 더 사정을 할 수 없었다. 주인님 살리자고 포뢰에게 죽어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불돌아, 어쩔 수 없다. 죽든 살든 구렁이하고 싸우자.”

“그래! 이제 다른 방법이 없어. 주인님하고 같이 죽는 수밖에...”

불돌이가 울면서 말했다. 그러자 포뢰가 다시 입을 열었다.

“기다려라. 나 하나가 죽어서 넷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부처의 길이 아니겠느냐? 종은 본래 부처의 대자대비를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내가 종소리를 내겠다.”

초록이와 불돌이, 까치까지 입을 딱 벌렸다. 포뢰에게 무한한 감사의 정을 느꼈다.

덩~ 덩~ 덩~

종소리가 세 번 울려 퍼졌다. 구렁이는 깜짝 놀랐다가 곧 백이와 목금을 풀어주었다.

“아, 종소리가 울리다니 기적이구나. 고맙다, 얘들아. 덕분에 승천할 수 있게 되었다.”

구렁이는 희미하게 변하더니 사라지고 말았다. 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울리더니 비가 쏟아져내렸다. 구렁이가 용이 되어 승천한 것이다.

“어, 어떻게 된 일이지?”

목금도 이 일만은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백이는 맨바닥에서 자서 그런지 몸이 찌뿌듯하다는 말을 했다. 구렁이가 다녀간 줄도 모르는 걸 보고 백이는 뒷목을 잡았다.

“어, 밤에 비가 내렸나봐. 비 때문인가? 종이 완전히 깨져버렸어.”

백이가 바닥에 떨어진 종을 보고 말했다. 포뢰가 두 사람을 구한 것은 영영 둘 다 몰랐다. 돌아가는 길에 불돌이가 파닥파닥 날아오르며 말했다.

“아, 내가 좀 더 세게 받으면 종소리가 났을 텐데. 짜증나. 은혜 갚은 불돌이가 될 수 있었잖아!”

“걱정 마. 그래도 은혜 갚을 뻔한 불돌이는 됐잖아.”

“야, 그게 뭐야! 너 튀겨버린다!”

초록이가 쌩하고 달아났다.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소설 『정생, 꿈 밖은 위험해』,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유사역사학 비판』을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보리타작 하는 계절”

이우석, 하은일록(霞隱日錄),
1902년 5월 29일 ~ 1902년 6월 2일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음력 5월 말은 보리타작을 시행하는 계절이다. 보리타작은 모내기가 끝날 무렵 시작되어 장맛비가 오기 전에 타작을 마쳐야 한다. 이우석의 집에서도 타작을 담당할 사람 3명을 고용하여 타작을 했다.

보리를 수확하게 되면 보릿단을 묶어서 당일이나 다음날로 되도록 빨리 보리타작을 해야 한다. 보리가 많지 않을 때에는 집 마당에서 집안 식구끼리 타작을 해도 괜찮지만, 양이 일정 정도 이상 많을 때에는 고용인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우석의 집도 그런 경우였다. 집 마당에서 보리 타작을 하기에는 보리 양이 많았기 때문에 보리를 벤 밭에 임시로 마당을 만들어 타작을 해야 했다. 이곳에서 일꾼들은 묶어둔 보릿단을 돌에 내리쳐서 보리 낟알을 털어야 했다. 새끼손가락 정도의 굵기로 된 밧줄로 보릿단을 감아 묶은 이 보릿단을 어깨 너머로 들어올려 내리치는 것이다. 이렇게 묶인 보릿단을 한 바퀴 돌려가면서 낟알을 털어낸 다음, 보릿단을 풀어 바닥에 널어 놓고 도리깨로 두들겨서 보릿단 속에 묻힌 보리 이삭까지 모조리 털어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도리깨질을 하면서 타작하는 일인데, 너무나 고된 작업이기 때문에 ‘옹헤야’ 같은 노동요가 보리타작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보리타작을 하노라면 보릿단이 얼굴을 찌르기도 하는 데다 한창 날씨가 더울 때 이루어지는 작업이어서 고되기 이루 말할 데 없다.

“양봉을 시도하다”

오희문, 쇄미록(𤨏尾錄),
1598년 5월 7일

1598년 5월 7일, 오희문은 올해 양봉을 해 보기로 하였다. 강원도에서는 벌이 많기도 하였고, 식구들에게 새로운 먹거리도 마련할 겸, 처음으로 양봉을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리하여 얼마전 지인에게 몇 개의 벌통을 받았는데, 가져올 때 잘못하여 벌들이 대부분 죽어버린 일이 있었다.

어제는 신수함에게서 벌통을 받았는데, 이 벌통의 새끼벌들을 오희문의 벌통으로 옮길 셈이었다. 신수함의 벌통에 연기를 쏘이자 새끼벌들이 나왔다. 이후 벌통을 동쪽 울타리 밖의 배나무에 매달고 종 수이로 하여금 벌들을 벌통으로 받으려 하였는데, 이 벌들이 도로 흩어져서는 뒷산 한마장이나 되는 숲 나무 밑에 모였다. 그리하여 간신히 이 벌들을 통에 담았다가 희철의 방 밖에다가 앉혀두었다. 거의 벌들을 날려 버릴 뻔하다가 도로 잡았으니 기쁜 일이었다. 종 수이는 처음 해보는 양봉이라 벌을 치는 법도 잘 모르고, 미끄러운 그릇에 벌들을 담으려 했는데 그것이 실수였던 것이다. 들어보니 미끄러운 그릇에 받게 되면 얼마 안가 벌들이 다 도망한다고 한다.

“관청에서 모내기를 ‘정(井)’자로 하도록 지시하다”

남붕, 해주일록(海洲日錄),
1926년 5월 8일 ~ 1926년 5월 11일

1926년 5월 11일 이날은 남붕도 모내기를 하는 날이었는데, 먼저 아침 일찍 옥금(玉今)으로 가서 소작인과 일꾼들에게 논 5두락에 모내기를 시작하게 했다. 그런데 봇물이 오지 않아 일손을 멈추고 나머지 일을 뒤로 미루었다. 봉후(峰後), 유전(田畓), 강단(江端)의 논 7두락에도 모내기를 하였는데, 일꾼 20여 명을 썼다.

이번 모내기에 예전과 달리 이렇게 많은 일꾼을 쓰게 된 것은 모두 면사무소 사람이 채근해서였다. 엊그제 마을 사람들이 면사무소를 찾아갔다 온 후로 예전 방식으로 모내기를 하자 면사무소에서 사람이 나와 아직 모내기하지 않은 집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반드시 ‘정’자로 모내기를 해야 한다고 성화를 하고 다녔다. 남붕 또한 면사무소 사람의 방문을 받고 마지못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

결국, 면사무소 사람이 채근하는 바람에 한 줄씩 모를 심었으므로 일꾼은 전보다 더 들었고, 앞으로 곡식 소출도 이익이 없고 감소될 것이 분명하니 한탄이 저절로 나왔다.

“모내기를 어렵게 하는 가뭄”

이우석, 하은일록(霞隱日錄),
1897년 5월 9일 ~ 1897년 6월 11일

요즘은 모내기철이다. 이우석(李愚錫)은 최근 여러 논에서 모내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위네 집에서도 월초에 모내기를 한다고 소식을 들었는데 이우석은 몸이 아파서 가지 못한 적이 있다. 모내기를 하려면 물이 많이 필요하지만 평창에는 저수지가 그렇게 많지 않아 비가 충분히 내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방도가 없다. 그런데 걱정스럽게도 요새는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고, 잇따라 맑은 날씨만 계속되고 있다.

5월 22일은 하지였는데, 가뭄 든 논이 많아 근처 논에서 태반이나 모내기하지 못하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모내기하는 시점에 물이 부족해서 모내기에 실패하면 아무것도 수확할 수 없게 된다. 이우석은 올해 농사가 매우 걱정스러웠다. 지금 시점까지 이 정도로 모내기하지 못한 상황이어서는 곤란하다. 30일이 되어서 들린 소식인즉, 횡성에 있는 갑천 같은 곳에서는 예년과 같이 모내기가 시작됐지만, 다른 곳에서는 여전히 태반이나 모내기를 시작하지 못하였다고 했다.

“장마 후 들판에 남은 곡식들을 살피다”

노상추,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1765년 5월 3일 ~ 1765년 5월 16일

노상추의 집안에서 경작하고 있는 논밭은 낙동강 주변에 펼쳐져 있었다. 가장 높은 소출을 내는 논은 포(浦) 인근의 밭이었다. 낙동강이 실어온 퇴적물이 좋은 영양분이 되어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컸다. 비가 많이 내려 낙동강이 범람하면 논밭에 심어놓은 곡식이 모두 쓸려 내려갔다. 여름이 되자 올해도 여지없이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났다.

비가 많이 내리기 전에 노상추의 집안에서는 보리타작을 미리 해두었다. 홍수가 나면 보리마저 쓸려 내려가기 때문에 제때 수확해서 양곡을 저장해 둬야 했다. 이번 하짓날에 타작한 보리는 이전에 미리 거둬 둔 것이었고, 아직 밭에는 채 수확하지 않은 보리들이 있었다. 노상추는 내리는 비를 보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장대비가 그치자마자 밭으로 나가 보았다. 다행히 들에 보리가 남아 있었다.

남은 보리를 갈무리하자 또다시 며칠 동안 굵은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이번에야말로 강물이 넘쳐 포 인근의 논밭이 잠기게 될 것 같았다. 보리를 거둬들인 후 포의 논밭에 남겨놓은 것은 밀뿐이었다. 과연 포 인근의 논밭은 모두 잠겨버렸다. 하지만 밀은 기특하게도 물에 둥둥 뜬 채 떠내려가지 않고 남아 있었다. 덕분에 밀도 보리와 마찬가지로 거둬들여 타작할 수 있었다. 장마철은 매일같이 하늘을 보며 일희일비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어머니 생신에 친지들이 곡식을 보내어 오다”

최흥원, 역중일기(曆中日記),
1746년 12월 14일

어머니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서 인근의 친족들도 최흥원의 집을 찾았다. 종지 마을과 지묘 마을에 사는 친지들이 모두 찾아와서 어머니께 축수를 올렸다. 그리곤 곡식을 수십 섬이나 최흥원의 집으로 보내어 온 것이 아닌가. 까닭을 들어보니 얼마 전 최흥원의 집 창고에서 불이나 살림살이가 어려워졌다는 소식을 듣고는 집안사람들끼리 운영하는 종계에서 곡식을 내어준 것이었다.

사실을 알게 된 최흥원은 친척들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감사했다. 이 친척들은 집안의 종손이라 하여 최흥원의 집을 신경 써준 것이리라. 그러나 최흥원은 이 곡식을 받지 않기로 하였다. 사적인 일에 종계의 곡식을 축내다 보면, 애써 만든 종계의 운영이 어려워질 것이리라. 최흥원은 이러한 뜻을 친지 어른들에게 간곡히 설명하며 마음만 받겠노라 이야기하였다. 비록 곡식은 물렸지만, 여러모로 마음이 따뜻한 어머니의 생일이었다.

“감사가 향약을 시행하도록 명하다”

김령, 계암일록(溪巖日錄),
1635년 3월 5일

1635년 3월 5일, 잠깐 비가 내리다가 종일 흐린 날이 계속되었다. 얼마 전 예조에서 전국에 향약을 시행하는 것을 건의하였다고 한다. 주상의 재가를 얻어 경상도 감사가 주와 현에 반포하여 각 고을마다 향약을 시행하도록 하였다.

인근 고을 현풍에서는 수령 김세렴(金世濂)이 이미 예전부터 시행해왔던 것인데, 여씨향약과 주자향약, 퇴계 선생이 정한 향약을 아울러서 향약의 약법을 만들었고, 그 내용 중에는 율곡 이이의 향약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 향교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옛 규례를 취하고, 거기에다가 『소학』의 훈계를 추가하여 이름을 학규(學規)라고 지었다. 이 학규는 향교 제생들에게 시행하게 하였다.

예조에서 명이 내려오자 감사가 현풍의 향약과 향규를 가지고 경상도 고을 모두에 반포하였다. 예안 현감인 남연(南碝)은 평소 향약을 매우 싫어하였는데, 지금은 나라에서 시행하는 것이니 막거나 무너뜨릴 수가 없게 되었다. 참으로 웃을 만한 일이었다. 예안 고을 내의 간악한 무리들 모두 향약을 불편하게 여겨 온갖 방법으로 소란을 피워댔다. 그러나 어찌하겠는가 나라에서 법으로 권면하는 것을. 이 간악한 자들이 그들 뜻을 펼 수 없게 되었으니, 더더욱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김령은 아무쪼록 향약이 아름다운 미풍양속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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