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이 시기가 찾아오면 습관처럼 기상 예보에 온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하루에도 수차례 기상청 홈페이지를 드나들며 마음을 졸인다. ‘올해는 부디 큰 탈 없이 지나가야 할 텐데, 수해로 눈물짓는 이웃이 없어야 할 텐데…….’ 하는 간절한 바람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기상 정보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간은 해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지구가 뜨거워지면서 산불 위험 기간 또한 늘어나고, 이제 우리는 일 년 내내 기후재난의 위협 속에 살아가고 있다.
그린피스와 카이스트 메타어스랩이 공동으로 분석한 기후위기에 따른 산불 위험도 시나리오를 살펴보면 이러한 위기는 수치로 극명히 드러난다. 산업화 이전에는 산불의 위험이 주로 4월에 머물렀으나, 오늘날에는 그 시기가 대폭 앞당겨졌다. 특히 경북과 전남, 충남북 일부 지역은 이미 2~3월부터 산불 위험권에 진입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지난해 우리는 기후재난이 드리운 여러 갈래의 위협을 목격했다. 그 신호탄은 산불이었다. 3월 21일, 산청에서 불길이 솟았다는 소식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화마의 진행 방향과 주거지 피해를 살피고, 행정 당국의 대응을 점검하며 재난대응 단체들과 실시간으로 상황을 공유했다. 처음 발을 디딘 단성중학교는 전국에서 모여든 100여 대의 소방차로 가득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헬기가 더 이상 뜨지 못하지만 산등성이의 화선은 더욱 선명하고 섬뜩하게 타올랐다. 불안에 휩싸인 주민들은 차마 잠들지 못한 채 대피소 주변을 서성이며 타들어 가는 마음을 달래고 있었다.
2025년 4월 청송 산불 현장을 조사하고 있는 강성원 캠페이너 (출처: 그린피스 제공)
이튿날 아침, 의성에서도 불길이 치솟았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급히 방향을 틀어 도착한 의성 체육관에는 이재민 구호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41개의 텐트 속에서 161명의 주민이 일상을 잃어버린 채 고단한 몸을 뉘고 있었다. 산불은 매서운 바람을 타고 거침없이 마을과 도시의 경계를 허물며 모든 것을 잿더미로 바꾸어 놓았다. 불길은 의성을 넘어 안동까지 무서운 속도로 번졌고, 안동 시내는 자욱한 연기에 휩싸여 숨조차 쉬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주민대피령이 내려진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불길은 멈추지 않고 청송을 지나 영덕의 해안가 마을까지 덮쳤다. 다급해진 주민들은 배를 타거나 해경의 도움을 받아 방파제로 대피하며 생사의 갈림길에 섰다. 의성에서 시작된 불은 무려 78km를 달려 영덕 바닷가의 배 한 척까지 태우고서야 비로소 멈추어 섰다.
“의성에서 시작된 불길이 예까지 닿을 줄 누가 알았겠는교.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정말 처음이구마.”
참혹한 재난을 몸소 겪고도 주민들은 여전히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2026년 7월 안동의 수해 현장을 조사하고 있는 강성원 캠페이너 (출처: 그린피스 제공)
봄날의 산불이 산천을 위협한다면, 여름은 장마와 태풍이라는 또 다른 시련을 안고 우리를 찾아온다. 지난 3월, 초대형 산불이 남긴 깊은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이번에는 유례없는 극한 호우가 전국을 강타하며 수마의 발톱을 드러냈다. 비보를 접하고 다시금 산청으로 향하는 길, 불과 몇 달 전 화마와 사투를 벌였던 이들이 겪을 기후재난에 대한 공포가 얼마나 뼈아플지 짐작되어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산청에는 단 나흘 만에 무려 793.5mm라는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성인의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차오른 셈이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연일 이어진 비로 지반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탓에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거대한 토사는 거침없이 마을을 덮쳤고,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산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상능마을은 마을 전체가 흙더미에 파묻혀 형체조차 찾기 힘들었다. 인근 숙박시설로 긴급 대피한 한 주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그날 밤의 사선을 넘나들던 순간을 전했다.
“밤새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갑자기 대나무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 본능적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옆집 아주머니와 뒷집 할머니를 챙겨 서둘러 집을 나섰는데, 이미 마을 길은 끊겨 있었어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손전등 하나에 의지한 채 산길을 돌아 돌아 겨우 목숨을 구했지요.”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에 숨죽이며 귀를 기울였지만, 그것은 엄연히 우리 이웃이 겪은 참혹한 실제였다. 그리고 찾아간 상능마을의 풍경은 참혹함 그 자체였다. 전봇대는 흉측하게 쓰러져 있었고, 마을의 핏줄 같던 도로는 폭격을 맞은 듯 처참히 잘려 나갔다. 결국 이곳은 복구 불능 판정을 받았고, 주민들은 정든 터전을 뒤로한 채 집단 이주를 준비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수해를 입은 경남 산청의 비닐하우스 복구작업을 돕고 있는 그린피스 시민대응단 (출처: 그린피스 제공)
지난해는 유독 가혹한 재난의 연속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거대한 위기의 시작일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강릉 시민들의 생명줄인 오봉저수지의 물줄기가 말라가더니, 8월 말에는 급기야 가뭄으로 인한 재난사태가 선포되기에 이르렀다. 가뭄의 기세가 절정에 달했던 9월, 우리는 강릉시자원봉사센터와 손을 잡고 식수 부족으로 고통받는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당마다 생수를 실어 날랐다.
“내 평생 여든여덟 해를 살면서 이런 가뭄은 처음 보오.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비가 안 오니 어쩌면 좋겠노. 이 먼 곳까지 찾아와 준 젊은이들이 참말로 고맙구마.”
마중 나온 주민의 주름진 손에는 안도와 고마움이 배어 있었다. 단수로 인해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유일한 안식처였던 경로당 모임마저 끊겨버린 이들의 일상은 기후위기가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말하고 있었다. 이처럼 기후재난은 때로는 불꽃으로, 때로는 흙탕물과 메마른 땅의 모습으로 우리 삶의 근간을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다.
참혹한 재난의 현장마다 수많은 구호 단체들이 달려와 따뜻한 한 끼와 의료의 손길, 그리고 구호물품을 건네며 이재민들의 무너진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특히 의성 대피소에서 마주한 어느 봉사자의 모습은 깊은 울림을 주었다. 자신의 보금자리가 잿더미로 변해버린 형언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그는 타인의 고통을 먼저 살피며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산청에 수마가 할퀸 상흔이 깊게 패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각지에서 이웃의 아픔을 나누려는 발길이 줄을 이었다. 복구의 손길이 적재적소에 닿을 수 있도록 산청의 지역 활동가들은 자발적으로 소통 창구를 개설하여 봉사자와 이재민을 잇는 가교 역할을 자청했다. 인근 하동의 활동가들은 정성껏 지은 밥을 들고 달려와 복구에 매진하는 이들과 나누며 기운을 북돋았다. 현장을 직접 찾지 못한 이들도 마음만은 함께였다. 마을 카페에 조용히 선결제를 해두어, 지친 이재민과 봉사자들이 시원한 음료로 잠시나마 숨을 돌릴 수 있도록 따뜻한 후원의 손길을 보탰다.
이렇듯 행정의 시선이 미처 닿지 못하는 그늘진 구석구석을 시민들의 자발적인 연대가 촘촘히 채워나가고 있었다. 이러한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산청의 지역 공동체는 ‘제 1회 대한민국 봉사와 나눔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단체 부문 자원봉사 대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재난은 분명 감당하기 벅찬 생의 위기이지만, 그 절망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서로의 곁을 지키는 이웃이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는다.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고 긴급 대응의 긴박함이 잦아들면, 세간의 관심과 언론의 카메라도 서서히 현장에서 멀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재민들에게는 그때부터가 진짜 고난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재난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낯설고 불편한 임시 주택에서 생활해야 하고, 때로는 예민해진 마음 탓에 이웃 간의 갈등을 겪으며 고립되기도 한다.

기후재난 현장을 돌아보고 있는 강성원 캠페이너와 시민대응단 (출처: 그린피스 제공)
그 고단한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우리는 영덕 신안리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화마가 휩쓸고 간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재민들의 곁을 지키며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아이고, 이 먼 길을 또 왔는교. 고생 많았니더, 잊지 않고 찾아와주니 참말로 고맙구마.”
2026년 3월 영덕 산불 이재민을 찾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시민대응단 (출처: 그린피스 제공)
첫 만남의 어색함과 경계심은 계절이 바뀌고 만남이 거듭될수록 눈 녹듯 사라졌다. 이제는 마주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면 한두 시간은 찰나처럼 지나간다. 소소한 일상부터 애틋한 손주 자랑, 오래전 시집와 남편에게 서운했던 기억까지 스스럼없이 털어놓으시는 그들의 모습은 이제 영락없는 가족의 얼굴이다. 가는 길에 먹으라며 자꾸만 무언가를 챙겨주시는 주름진 손길에는 투박하지만 진한 진심이 배어 있었다.
우리는 이 소중한 만남의 기록들을 정성껏 모아 『재난을 살아내는 중입니다』라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신안리 이재민 열두 분의 삶이 녹아 있는 이 이야기는, 기후재난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이 위기를 건너야 하는지에 대한 귀중한 지혜를 들려준다.
영덕 산불 이재민의 이야기를 담은 『재난을 살아내는 중입니다』 (출처: 그린피스 제공)
기후위기가 심화되며 재난이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이제 모두가 체감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막상 어떻게 대비해야 하느냐는 물음 앞에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일상에서 재난 대응을 배울 기회나 정보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1995년 발생한 일본 한신대지진 당시, 구조된 이들의 98%가 스스로 탈출했거나 이웃의 손길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는 통계가 있다. 이는 위급한 상황에서 행정의 손길이 닿기 전, 스스로를 지키는 힘과 이웃 간의 연대가 얼마나 결정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가장 눈에 띄기 쉬운 현관앞에 배치한 비상배낭 (출처: 그린피스 제공)
따라서 개인이 먼저 재난 유형에 따른 행동 요령을 숙지하고 철저히 준비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활 반경 내의 대피소 위치를 미리 확인하고 이동 경로를 몸소 익혀두어야 한다. 가족 또는 동거인과 비상 연락망을 공유하며 비상배낭을 꾸리고, 실제 상황 시 각자의 역할을 미리 정해두는 준비가 필요하다.
이웃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작은 관계 맺기 또한 기후재난 시대를 살아가는 든든한 보호막이 된다. 평소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면 옆집에 누가 사는지,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고령층이 있는지 아이는 없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어 비상시 서로의 생명을 지켜줄 수 있다. 나아가 이웃들과 함께 대피 훈련을 직접 해보는 경험도 큰 힘이 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기후재난으로부터 시민을 온전히 보호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기틀을 공고히 다져야 한다. 사고 후 수습하는 단계를 넘어, 예방과 온전한 회복에 초점을 맞춘 정책을 수립하고 특히 재난 취약계층을 보듬는 세심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결국 기후재난은 기후위기에서 비롯된다. 눈앞의 재난에 현명하게 적응하는 노력과 함께, 그 근본 원인인 온실가스를 과감히 줄여 기후위기를 막는 일 또한 우리가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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