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전 『홍루몽』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보옥〉이 최근 대구 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공연하며 국내 관객에게 첫선을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상을 수상했고, 대구 공연에 이어서 곧바로 대학로 아르코 대극장에서 단 2회의 짧디짧은 횟수이긴 해도 서울 관객을 만났다. 『홍루몽』은 중국에서는 삼국지나 수호지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대중적으로 인지도 높고 인기가 많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한국에서의 인지도는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대체로 전공자가 아니라면 방대한 홍루몽 전작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을 듯싶다. 게다가 ‘몽(夢)’ 시리즈라고 하면 한국에서는 『홍루몽』 보다 오십 년 넘게 앞서서 발표된 조선시대의 작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구운몽』과 『홍루몽』은 같은 꿈이라 해도 지향점이 상당히 다르다. 둘 다 양국 꿈 시리즈의 선두라고 할 수 있지만 극단적일 정도로 꿈의 방향이 다르다.
방대한 양의 『홍루몽』을 뮤지컬로 만들어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 아닌가 싶지만 꽤나 불가능해 보였던 〈레미제라블〉도 뮤지컬로 훌륭하게 각색되었음을 생각해 보면 아주 불가능한 작업은 아닌 듯하다. 『홍루몽』의 뮤지컬 버전에 도전한 제작사는 ‘닌징해소문화전파유한공사’로 작품의 서사를 사건 위주로 끌고 가겠다는 생각을 일찌감치 버리고 주인공인 보옥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으로 어떻게든 결론까지 다다른다. 이 작품이 그리는 가보옥의 이야기에서는 뮤지컬이라면 필수 요소로 여겨지는 주인공의 성장 서사도, 통속적 순애보와 해피앤딩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대 위에서 보옥은 끊임없이 ‘인연 있는 자들’과의 업보를 쌓아간다. “모든 것이 허무로 돌아간다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해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보옥은 늘 인간 남자로서의 사회적인 성공, 즉 유교적 가치관인 입신양명을 혐오하고 그보다는 사랑을, 즉 정을 선택한다. 무(無)로 돌아간다 해도, 전생으로부터 이어진 정을 어떻게든 이어 나가겠다는 흔들리지 않는 선택이 그에게는 확고하다. 그리고 이 선택이 가씨 가문의 공자 보옥이라는 주인공에게는 재앙이 된다. 그에게 주어진 운명에는 정을 주고받은 인물과 맺어짐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뮤지컬의 줄거리를 간단히 요약하면, 하늘에서 쓰임새를 받지 못한 돌이 인간 세계의 정이 궁금해 인간의 아이로 태어나는데 이때 입에 옥을 물고 태어나 보옥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전생에 그가 감로수를 주어 키웠던 식물 또한 그를 따라 인간으로 태어나 은혜를 눈물로 갚겠다 맹세한다. 가보옥은 태어날 때부터 입에 신비한 옥을 물고 태어난 특별한 존재로 명문 귀족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지만, 과거시험과 출세를 중시하는 봉건적 가치관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시와 예술, 자연, 그리고 사람의 진실한 감정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여겨 입신양명을 중히 여기는 아버지와 갈등한다. 보옥이 마음에 둔 사람은 병약하지만 뛰어난 재능과 섬세한 감성을 지닌 사촌 임대옥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누구보다 이해하는 존재이지만, 가문의 이해관계와 혼인 정책 때문에 그들의 사랑은 순탄하지 않다. 집안 어른들은 가문의 안정을 위해 보옥을 또 다른 사촌인 부잣집 딸 설보채와 혼인시킬 계략을 꾸민다. 그 이면에는 화려했던 가씨 가문이 정치적 음모와 권력 다툼 속에서 점차 몰락의 길을 걷게 된 탓도 있다. 보옥이 대옥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잘 아는 가문의 어른들인 할머니 가주와 왕희봉 등은 보옥 몰래 설보채를 신방에 들여보내고, 신부의 얼굴을 가렸던 붉은 덮개를 걷어내고서야 사실을 알게 된 보옥은 절망을 느낀다. 게다가 설보채가 보옥의 아내가 된다는 걸 알게 된 대옥은 눈물과 각혈을 멈추지 못하고 혼인이 열리는 시간에 세상을 떠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가문의 몰락까지 겪은 보옥은 세속의 부귀와 명예가 모두 덧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을 속박하던 세속을 떠나 출가를 선택한다. 권력과 재물, 명예보다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서며 뮤지컬의 막이 내린다.
뮤지컬 〈보옥〉 가보옥과 임대옥 (출처: 필자 제공)
뮤지컬 〈보옥〉 공연 스틸컷 (출처: 필자 제공)
보옥의 비극은 그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재앙의 각본 안에 놓여 있었다. 원작 신화에서 그는 여와가 하늘을 메우고 남은 '쓸모없는 돌'이며, 동시에 강주선초에게 감로수를 베풀어 평생의 눈물 빚을 지운 신영시자(神瑛侍者)였다. 뮤지컬은 이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해, 보옥과 통령보옥을 ‘영혼과 육체가 하나로 융합된’ 존재로 그려낸다. 보옥은 처음부터 자기의 서사를 써 내려가는 인물이 아니라 이미 쓰여진 운명의 주인공으로 태어난다. 현실 세계와 꿈의 세계를 이어 주는 환상의 경계인 ‘태허환경(太虛幻境)에서 보옥은 이미 인간 세상의 운명에 대한 암시를 받게 된다. 이곳에는 그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현실에서 겪을 사랑과 이별, 가문의 몰락이 모두 기록되어 있고 현실은 태허환경에서 본 꿈 그대로 흘러간다. 보옥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이야기의 흐름과 결말은 바뀌지 않는다. 그에게 주어진 운명 자체가 보옥에게는 재앙이다. 그에게 있어서 인생의 재앙은 어떠한 사건이 아니라 조건이 되어 그의 삶의 하루하루를 죄어온다.
뮤지컬의 이야기가 대부분 진행되는 대관원과 태허환경이 때때로 교차하는 구조는 이 재앙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대관원은 보옥이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공간, 시를 짓고 웃음을 나누는 순수의 낙원이다. 반면 태허환경은 그 낙원이 언젠가 스러질 것임을 이미 알고 있는 예언의 공간이다. 보옥은 이 두 세계 사이에서 갈등하는데, 이 갈등 자체가 이미 패배가 예정된 싸움이다. 그가 아무리 대관원의 시간을 붙잡으려 해도, 태허환경에 쓰여진 미래에는 대관원에서의 행복한 시간의 종말이 이미 쓰여 있다. 개인의 의지와 우주적 각본 사이의 이 비대칭이야말로, 홍루몽적 재앙의 본질이며 뮤지컬이 무대 미학으로 가장 예민하게 드러내려 한 부분인 듯하다.

뮤지컬 〈보옥〉 공연 스틸컷 (출처: 필자 제공)
주목할 것은 보옥이 재앙과도 같은 운명 앞에서 보이는 태도다. 그는 운명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속세의 참된 정을 자처하며, 비록 헛된 꿈임을 알면서도 온 힘을 다해 사랑하고 아파하기를 선택한다.”는 뮤지컬의 서술은, 이 인물이 재앙을 회피하는 대신 정면으로 끌어안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이 또한 역설적일 수 밖에 없는데, 그가 자유의지로 선택한 것처럼 보이는 그 사랑조차, 실은 신영시자와 식물이었던 강주선초의 눈물빚이라는 신화적 각본에 미리 쓰여진 것이다. 그러니 보옥의 '선택'은 사실 그의 개인적인 재앙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톱니바퀴다. 그는 도망칠 수 있었던 적이 없었고, 다만 그 사실을 얼마나 뒤늦게, 얼마나 고통스럽게 깨닫는가만이 그에게 남겨진 유일한 자유라고 할 수 있다.
뮤지컬 〈보옥〉 공연 스틸컷 (출처: 필자 제공)
뮤지컬 〈보옥〉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생각보다 진지하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정해진 서사 속에 놓인 존재가, 그 서사를 알면서도 사랑하기를 그만두지 않는다면 그것은 순응인가, 저항인가 혹은 경험 그 자체로서의 가치인가. 가보옥이라는 인물은 봉건 가문의 후계자였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는 더 크고 근원적인 감옥에 갇힌 존재였다. 그가 끝내 출가로써 그 감옥을 벗어나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재앙이 완전히 소진된 후에야 허락되는 유일한 퇴장이다. 무대 위의 등롱과 수묵빛 조명 아래서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화려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한 인간이 자신의 정해진 운명과 끝까지 정면으로 마주하는 조용하고 잔혹한 풍경이다. 하지만 뮤지컬 〈보옥〉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 홍루몽의 내용을 알지 못하는 관객에게는 등장하는 인물들간의 관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아서 대옥은 그저 몸이 약해 칭얼거리는 인물로, 보옥은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지만 행동으로는 옮기지 않고 가문의 처신만을 바라는 유약한 인물로 보인다. 그 외 다른 인물들은 도무지 무슨 관계인데 한 집안에서 머물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배경이 되는 대관원만 해도 원작에서는 보옥의 손위 누나인 원춘이 황제의 비로 책봉되어 친정에 들르는 행사를 위해 지어진 화려한 정원과 그에 딸린 집들이다.그리고 이 대관원 안에도 건물들이 나뉘어져 있어서 각자의 성격을 대변하지만 대관원이 어떤 곳인지는 뮤지컬만 봐서는 알 길이 없다. 또한 중간에 등장해 꽤 중요한 인물처럼 보이는 왕희봉만 해도 선악을 넘나드는 매우 입체적인 인물이며 가씨 집안의 며느리지만 이 사실을 알 길이 없다. 사실 서로에 대한 호칭만 몇 번 정리가 되었어도 해결될 수 있는 문제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사기 결혼식을 향해 긴장이 고조되어가는 2막에 비해 1막은 등장인물 소개와도 같은 지루한 감정들이 노래로 나열되어 2막이 걱정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인공 가보옥이 부르는 마지막 노래와 대사는 심금을 울린다.
“잠시 한바탕 꿈을 빌려,
나는 본래 욕망도 바람도 없는 돌이었으니
인연을 맺을 마음도 없이
자유롭게 머물렀건만
인간 세상의 풍월의 빚을 갚겠다는
헛된 생각을 품은 순간
수많은 인과의 얽힘 속에서
끝내 벗어날 수 없게 되었구나”
돌이었던 보옥에게 사랑의 상처가 남았으나 그 상처를 준 기억을 간직하고 살아가겠다는, 사랑했음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마지막 대사와 노래는 놀랍다. 일장춘몽, 허무함이 아니라 운명이 준 재앙이라 불릴만한 상실의 고통이건만 사랑했음은 간직하겠다는 슬픔을 꾹꾹 눌러 담아 쓴 듯한 마지막 노래가 뮤지컬 〈홍루몽〉을 홍루몽이게 한다. 잘 다듬어서 더욱 멋진 모습으로 돌아와 재회하기를 기대하게 된다. 보옥과 대옥의 아름다운 의상과 함께.
|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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