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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과 재해가 몰려와도
사람들은 함께 일어선다

무더위와 장마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높아진 습도에 더욱 무덥고 끈적끈적한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장마 기간도 점점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갑작스런 폭우가 발생하거나 예상과 달리 비가 오지 않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무더위는 열사병, 폭우는 홍수나 침수 문제를 불러옵니다. 더욱이 한반도를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태풍도 우리 모두를 걱정하게 만듭니다.

웹진 〈담談〉 8월호의 주제는 ‘재난과 재해’입니다. 여름은 우리에게 많은 추억을 남겨주기도 하지만 인류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재난과 재해가 발생하는 시기입니다. 먼 과거부터 현재까지 사람들은 재난과 재해를 피하거나 막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잘 살펴보면 결국 인간은 재난과 재해를 피하거나 막을 수 없었습니다. 과거에도 현대에도 발생하는 재난과 재해를 완벽하게 대비하는 방법은 찾지 못했습니다.

사실 인류의 힘으로는 재난과 재해를 피하거나 막아낼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무리 무서운 재난과 재해가 닥쳐와도 삶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재난이나 재해를 만났을 때 사람들을 살리고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모두가 함께 노력했습니다. 재난과 재해를 힘으로 이기지는 못했지만 최대한 피하면서 모두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왔습니다. 그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지금까지 함께 모여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재영 교수는 여유와 근심, 그리고 견뎌냄의 기록’에서 처서의 의미와 조선시대 사람들이 재난과 재해를 대비하고 고난을 견뎌내었던 방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처서 전후의 시기는 여름의 끝자락이었지만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수확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일에 대한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여름에 발생할 수 있는 재난 및 재해의 대비와 연결된 것이기도 했습니다.

조선시대 농민들은 짧은 기간 동안 피해를 주었던 수재와 오랜 기간 동안 농사를 방해했던 한재를 특히 우려했습니다. 조선은 수재와 한재라는 재해를 대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준비해 시행했고, 당대의 농민들은 처서의 신선한 바람 속에서 수확의 결실을 기대하며 큰 상처를 주었던 재난과 재해를 조금씩 극복했습니다.

강성원 활동가는 ‘기후재난에 맞서는 지혜: 대비, 연대, 그리고 행동’에서 기후재난의 다양한 모습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재난대응 단체들과 행정 당국의 대응에 관한 이야기를 현장감 넘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특히 2025년 대한민국 전체를 두려움에 떨게 했던 대규모 산불과 바로 이어졌던 폭우는 산사태까지 부르며 많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하지만 수많은 구호 단체와 활동가들의 노력과 전국에서 이어졌던 복구의 손길은 이재민들이 재난을 살아내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서은경 작가는 웹툰 ‘독 선생전’ 27화 「벼루 특집 – 호랑이 기운」에서 호환이라는 재난을 만나 공포에 시달리는 청년이 벼루의 맹활약으로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호랑이를 만나 피해를 입었을 때, ‘호환(虎患)’이라 표현했습니다. 조선을 살아갔던 선조들에게 산이나 마을에서 호랑이 때문에 사람이나 가축 등이 다치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호환은 조선시대 사람에게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았던 재해 또는 환란이었습니다.

이수진 작가는 ‘선인의 이야기, 오늘과 만나다’ 「옥에 사랑이 새겨졌음에, 옥은 후회하지 않았다」에서 중국의 대표 고전 『홍루몽』을 기반으로 제작된 뮤지컬 작품 〈보옥〉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작품의 주인공 가보옥은 제약된 환경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삶은 하나의 재앙이 되어버립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재앙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끌어안는 방식으로 버텨냅니다. 이는 우리가 재난과 재해를 이겨낼 수 없지만 최선을 다해 대비하고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비슷해 보입니다.

이문영 작가는 소설 ‘백이와 목금’ 「상사화가 핀 길」에서 더운 여름과 춘궁기를 버텨내던 조선시대의 사정을 이야기해 줍니다. 사람들에게 환곡이 필요했던 이유와 곡식이 부족할 때 버텨냈던 구체적 상황들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여기에 더해 한익범과 목금의 행복한 순간도 이어집니다.

이남옥 연구위원은 ‘2026년 국학자료 심층연구 Q&A’ 「관찬사료 밖, 조선의 찐 풍경을 만나다 - 『운창일록』과 옛한글에 담긴 조선의 삶-」에서 2026년 국학자료 심층연구에 대한 여러 질문에 대해 답변해 주었습니다. ‘국학자료 심층연구’ 사업의 성격과 『운창일록』과 ‘한글, 조선의 내밀한 풍경을 읽다’의 내용과 의미 등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국학자료 심층연구 사업의 성과와 향후 연구 방향 등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2026년에도 재난과 재해는 계속되었습니다. 산불 등의 화재와 폭우로 인해 발생한 수해까지 우리는 계속되는 재난과 재해에서 안전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힘을 모아 재난과 재해의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도왔고, 상처 입은 분들을 위로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는 수많은 재난과 재해를 경험해 왔습니다. 아무리 큰 재난과 재해가 우리를 노리더라도 서로를 돕고 위로할 수 있는 마음이 준비되어 있다면 모두 함께 잘 살아가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편집자 소개

이규철
이규철
가톨릭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조선전기사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다시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에서 역사콘텐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사학과에서 근무 중이다. 대표 저서와 논문으로는 『정벌과 사대 – 15세기 조선의 대외정벌과 대명의식』, 「연산군 대 대외정벌 추진 과정을 통해서 본 외교 역량의 약화」, 「서울史의 경계 확장과 역사적 소재의 활용 - 단종·연산군을 중심으로 -」, 「1419년 대마도 정벌 전후 조선과 명-일본의 표면적 신뢰와 내면적 불신」 등이 있다. 조선전기 국제관계의 변화, 역사콘텐츠의 활용 및 역사학 분야의 저변 확대에 대한 연구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조선 남부의 수해를 구제하고자 구제금을 모아 보내기로 하다”

심상석, 녹동일기(鹿洞日記),
1933년 5월 13일(윤)

1933년 윤5월 13일 아침 훈시 시간에 송기식 선생은 황희 정승과 김종서의 일화를 들려주셨고, 오전에는 법제와 경제로 시험을 쳤는데, 문제는 ‘후견이란 무슨 뜻인가?’와 ‘상속의 두 큰 주요 유언이란 무엇인가?’였다.

오후에는 날이 더워서 모든 선생들과 학생들이 냇가를 찾아 목욕을 하고 돌아왔다. 심상석도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좋아 한시 한 수를 지었다.

녹동서원에 돌아온 후 심상석은 전날 저녁 신문에서 본 조선 남부의 수재 소식이 떠올랐다. 놀랍게도 수재민이 46,000명에 이르고, 손해액은 일천만 원이라는 소식을 듣고 심히 놀라고 슬퍼하였다. 명교학원의 선생님 이하 수강생 모두가 합동으로 구제금 5원을 내어 장차 신문사에 부치기로 했다.

“사람은 잡초를 뽑고 바람은 지붕을 뽑다”

김주현, 정강일기(定岡日記),
1940년 6월 5일 ~ 1940년 6월 20일

장마철이라 매일같이 비가 내린다. 덕분에 잡초의 기세가 등등하다. 사람만 괴로울 뿐이다. 김주현(金冑現)은 잠깐 비가 그친 사이에 뜰에 쭈그려 앉아 잡풀을 뽑았다. “뜰의 잡풀을 뽑지 않는 자는 반드시 어리석고 게으른 자일 것이다.” 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꽃 계단 위의 잡풀까지 뽑아낸 뒤 두엄에 버려두고 손을 탁탁 털어냈다.

집안의 잡풀도 돌아서면 또 자라나지만 진짜로 골치 아픈 것은 논과 밭의 잡초다. 농사꾼들은 다들 비를 맞아가며 밭에 나가 김을 매고 또 맸다. 김주현도 목화밭과 콩밭의 김 매는 상황을 시시때때로 확인했지만 비 때문에 작업이 어렵고 계속 지체되었다. 하지만 안 뽑으면 원래 심어놓은 작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잡초가 자라니 그만둘 수도 없다.

하늘이 보기에는 초가집 지붕도 잡초같이 보이나 보다. 심한 폭풍이 몰려와서는 김주현 집의 사랑채 지붕 이엉을 뽑아 버렸다. 심한 비까지 내려서 온 집안사람이 혼비백산이었다. 다른 집들도 비슷한 꼴을 당한 듯하다. 김주현은 사랑채에 내 놓은 책이 비를 맞을까봐 열심히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비가 조금 잦아들자마자 지붕을 곧바로 수선했다. 요란한 장마철이다.

“지속되는 가뭄과 왕실 기우제”

이우석, 하은일록(霞隱日錄),
1901년 6월 6일

계절은 어느덧 한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침부터 강렬한 태양 빛이 내려 쪼이던 초복 아침, 이우석은 최근 며칠간 보지 못했던 신문을 모아 요새 왕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기우제 기사였다. 최근 하지가 이미 지났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지속되고 있으니, 기우제 날짜를 기다릴 것 없이 빨리 기우제를 시행하자는 장례원(掌禮院)의 건의가 있었다고 한다. 황제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삼각산·목멱산·한강에다 첫 번째 기우제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비가 내리지 않았기에 두 번째 기우제는 날짜를 점치지 말고 지내되 헌관 이하 집사(執事)를 각별히 선택하여 임명하게 하셨다고 한다.

“연이은 흉년에 대신들의 녹봉도 깎이다”

노상추,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1815년 5월 17일 ~ 1815년 5월 19일

논바닥이 갈라지고 모판의 모는 다 말라비틀어졌다. 올해 농사도 망했다. 들으니 조정에서 관문이 내려와 선산 부사가 어제부터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지만 과연 하늘이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 간혹 늦게 이앙해도 큰 풍년이 드는 경우가 있다지만 그런 요행을 바랄 수 있을지. 노상추는 하늘을 바라보며 주름진 얼굴을 더 구겼다.

청운동으로 나가 이앙할 논을 바라보니 이곳 역시 물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앙은 할 수 있을 정도여서 두 마지기는 이앙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하지 못했으니 조만간 비가 내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조정에서는 백관에게 나누어주는 급료가 부족하여 대신의 녹봉도 2섬에 그쳤다고 한다. 나랏일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지 않았는가. 조정이 이럴진대, 강호에서 근심하는 것이 어찌 묘당보다 덜하겠는가.

“춘궁기에 관에서 나락과 콩을 꾸다”

김택룡,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
1616년 4월 12일 ~ 1616년 4월 14일

1616년 4월 12일, 날이 밝을 무렵 김택룡의 노비인 애남과 춘금이 환곡(還穀)을 나르러 구고로 갔는데, 정오가 안 되어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틀 뒤 4월 14일, 참봉 김효선(金孝先)과 진사 박회무가 택룡을 방문하였다. 두 사람은 안동부사 박동선(朴東善)이 환곡을 나누어 주려고 내성(奈城)의 현 창고[縣倉]에 오기 때문에 그를 만나러 간다고 하였다. 택룡도 안동부사에게 편지를 쓰면서 환곡을 요청하여 산장(山庄)의 아이들을 구원해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애남에게 명하여 그 곳으로 소를 끌고 가서 운송해오게 하였다.

저녁이 되자 애남이 환곡으로 내어 받은 나락과 콩을 가지고 왔다. 애남이 와서 전하길, ‘안동부사께서 재산을 거쳐 돌아가시는 길에 한곡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싶으시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택룡의 편지에 따로 답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다.

“천지간에 돌림병을 피할 곳이 없게 되다”

최흥원, 역중일기(曆中日記),
1756년 4월 2일

1756년 4월 2일. 최흥원이 머무는 곳에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함께 머무는 사촌 통숙이 병이 들었는데, 증후가 틀림없는 돌림병이었다. 최흥원은 사촌 아우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어쩌나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한편으로는 최흥원 자신은 다시 거처를 옮겨야 하나 고민하였으나 도저히 다른 곳으로 옮길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환후는 그나마 심해지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시는 집의 처소도 불안하였는데, 그 집의 주인이 돌림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림병을 피해서 어머니는 다른 집에, 최흥원도 임시 처소에 나와 있는데 병을 피해간 곳마다 환자가 하나씩 누워 있는 셈이니 과연 병을 피하는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유행병 반진의 치료법”

엄경수, 부재일기(孚齋日記),
1707년 5월 1일

1707년 5월 1일. 요사이 유행성 반진이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시작되어 서울까지 번졌다. 이 반진은 두창이랑 비슷하지만, 치료법은 매우 달랐다. 어떤 사람은 ‘두창은 서늘하게 해주고, 반진은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라고 했는데, 올해 유행하는 반진은 이전과는 또 달라서, 의원들이 치료법을 몰라 헤매다가 대부분 치료 시기를 놓치고는 뒤늦게 약성이 강한 약으로 병을 다스리게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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