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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이와 목금

상사화가 핀 길

“아이고, 더워라.”

목금이 백이네 집 대문을 넘으며 신음처럼 말을 내뱉었다.

“어서 와라, 마침 미숫가루 먹으려던 참인데 같이 먹자.”

백이가 반가워 하며 말했다.

“차가운 우물물에 타서 아주 시원하니까 쭉 들이켜.”

목금은 백이가 내준 미숫가루를 들이켰다. 온몸에 냉기가 쫙 흐르며 더위를 한 번에 가셔주었다.


(AI 생성 이미지)


“우물에 수박도 담가 놓았으니 좀 있다 꺼내먹자.”

목금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와, 오늘 아주 잔칫날이구나. 고맙다.”

“너무 더우니 꼼짝하기도 싫어서 너희 집에도 못 가봤는데, 찾아와주니 내가 고맙지.”

“내가 부채질이라도 해줘야겠네.”

목금이 부채를 들고 와 살랑살랑 부쳐주기 시작했다.

“됐다, 됐어. 우리 사이에 무슨……. 너, 무슨 일이 있어서 온 거지?”

백이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목금이 배시시 웃었다.

“어떻게 알았어?”

“세책방 하느라 바빠서 낮에는 얼씬도 안 하는데, 이리 더운 날 찾아온 거 보면 뻔하지, 뭐.”

“맞아.”

목금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무슨 일인데? 이 언니가 도와줄테니 얼른 말해 봐.”

“동생이 참 입은 살아가지고. 내가 생일 이틀 빠른 거 까먹었냐?”

“아이고, 참 잘 나셨다. 하하.”

목금도 까르르 웃다가 용건을 꺼냈다.

“사실은 말야. 사또 나리를 만났지 뭐야.”

“오호, 그 잘생긴 사또 나리~”

백이가 웃으며 손가락을 배배 꼬았다.

“뭐야, 그런 거 아냐.”

“사또 나리가 걸핏하면 너희 세책방에 놀러가는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목금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망허촌에 소문이 꽤나 퍼진 모양이었다.

“흠흠, 올 여름이 워낙 더웠잖아. 비도 많이 안 오고.”

목금은 용건으로 직진했다.

“남녀 사이도 화끈하고…….”

백이가 킥킥 댔다.

“그래서! 올해 소출이 적을까봐 노심초사 중이시더라고.”

“흠, 그건 그래. 우리 소작인들도 벌써부터 죽는 소리들 하고 있더라고.”

백이도 목금의 말에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더구나 환곡 문제도 심각하잖아.”

“그건 잘 모르는데? 환곡은 춘궁기에 백성들 도와주려고 곡식을 빌려주는 거 말하는 거 아냐? 그게 왜 심각해?”

“전임 사또가 장부를 엉터리로 만들어놔서 그걸 메꾸느라 아주 고생이 많았대. 올봄에 환곡 나간 건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그런데 올해 소출이 적을 것 같으니 심각할 수밖에. 그 때문에 농민들이 모두 걱정이 많더라고.”

“그래? 그럼 어쩌지?”

“올해만 잘 넘기면 어찌 될 것 같다고 하지만, 이제 다들 먹을 게 달랑달랑할 때라서…….”

목금은 말을 하다가 말았다. ‘다들’이라고 말했지만 정 진사댁은 예외다. 더우면 미숫가루 먹을 정도로 부족함을 느껴본 적이 없는 곳이니.

“그래도 그 정도는 버틸 것 같은데? 추수까지 그리 멀지도 않잖아.”

“그게 말이야, 먹을 게 모자라면 풋바심을 하기도 하니까 소출이 더 적어져.”

“풋바심? 풋바심이 뭐야?”

“완전히 여물지 않은 벼이삭을 베어서 먹는 걸 풋바심이라고 해. 말려서 쪄먹거나 볶아서 먹어. 맛도 나쁘지만 굶어 죽을 순 없으니까. 원래 일찍 베려고 작정하고 심은 거긴 한데, 먹을 게 넉넉하다고 보면 일찍 베는 올벼는 아예 심지 않겠지. 올벼도 기다리면 더 알차게 익지만.”

“뭐라고? 그 정도야?”

“그 정도야. 좀 형편이 나은 곳은 요즘 신종 작물인 고구마, 감자를 캐 먹기도 하더라고.”

백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 나도 먹어봤는데 맛있더라.”

“하지만 그걸로는 많이 모자라.”

“그렇구나. 사또 나리는 어떻게 한대?”

“일단 이획(移劃)을 요청하실 거래. 이획은 감영에 긴급 구휼을 요청한다는 이야기야. 그리고…….”

“그리고?”

“권분(勸分)이야. 곡식을 기부받고 공명첩을 내리는 거지.”

백이가 드디어 알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우리집에 납속(納粟)을 해달라고 온 거구나.”

백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했다.

“아버지는 초시밖에 급제하지 못해서 평생 한이 있으신 듯하니, 공명첩을 받을 수 있다면 납속도 마다하지 않으실 거야.”

마을에선 정 진사라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정 진사는 문과 향시 급제자로 진사가 아니었다. 그때 부친상을 당하면서 한양에서 치르는 복시에 응할 수가 없었고 그 후에는 과거를 치를 상황이 아니어서 결국 시험을 치지 못했다. 그렇긴 해도 망허촌에선 향시 급제만 해도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에 다들 정 진사라 높이 불렀던 것이다. 당연히 정 진사에게는 과거 급제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남아 있었다.

“그래. 아마 종4품 부호군(副護軍) 첩지를 받으실 수 있을 거야.”

“우와, 종4품이라고? 당장 아버지 뵈러 가자.”

정 진사는 망허촌의 제일 가는 지주였기에 사또의 공명첩 제안에 바로 응했다. 정 진사가 응하자 다른 지주들도 응해서 관아의 창고가 가득 찰 수 있었다. 한익범 사또는 정 진사가 제일 먼저 응해준 것을 기려서 종3품 오위장(五衛將)의 첩지를 내려주었다. 실질은 없는 명예직이지만 종5품인 현령보다 한참 윗급이 된 것이다.

큰 공을 세웠다는 핑계로 목금의 세책방에 한익범이 들렀다.

“소녀가 무슨 공이 있겠습니까? 정 진사…… 아니 정 오위장께서 큰 결심을 한 덕분이죠.”

“그렇게 겸손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사실은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낭자의 지혜를 좀 빌리고 싶어서 온 것이기도 하다.”

목금이 얼굴을 붉혔다.

“제가 무슨…….”

목금의 얼굴을 빨려들어갈 듯 바라보던 한익범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창고 곳간은 가득 찼지만, 이걸 어떻게 굶주리고 있는 백성들에게 나눠줄 것인지 고민인 중이다. 무슨 좋은 방도가 없겠느냐?”

“그냥 형편에 따라 나눠주면 되지 않습니까?”

“아니 된다. 공으로 식량을 받으면 사람들이 게을러진다. 나라 곡식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법도도 없고.”

“그럼 공사를 하는 게 어떨까요?”

“공사? 어떤 공사 말이냐?”

“영묘(英廟=영조) 때 한양의 청계천 준설 공사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 청계천의 범람도 막을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고을도 작은 시내인 저 망허천을 넓히는 공사를 해서 물길을 트고 공사 노임을 지급하여 백성들을 배부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익범이 무릎을 쳤다.

“그거 정말 좋은 방법이구나. 바로 공문을 붙이고 시행해야겠다. 정말 우리 고을의 꾀주머니로구나.”

“도움이 되었다니 참으로 기쁘옵니다.”

목금의 얼굴이 더 빨개지고 말도 더듬고 말았다. 그 순간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한익범은 목금의 손을 덥석 잡았다.

“목금 낭자.”

“어마, 이러시면 아니 되옵니다.”

목금이 손을 빼려고 했지만 무관 출신인 한익범의 손은 크고 단단해서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낭자, 나는 아마도 내년이면 한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아직 3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긴 한데, 조정에서는 망허촌의 급한 일은 끝났다고 보는 것 같다. 나는 원래 망허촌의 괴변을 다스리기 위해서 왔던 것이니.”

“아아, 그렇군요. 배 씨 자매의 원한을 달래주셨으니…….”

“그래, 그러니 이제 시간이 많지 않구나. 내가 한양에 자리를 잡는대로 기별을 보낼 것이니 나를 따라오겠느냐?”

“그, 그건…….”

“바로 답하지 않아도 좋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 마음이 결정되면 알려다오.”

“아…… 알겠습니다.”

사실 너무나 갑작스러워 목금도 가슴만 콩닥콩닥 뛸 뿐 더는 머리도 돌아가지 않았다. 한익범이 돌아간 뒤에 목금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래러 뒷마당으로 나갔다. 바람이 어느새 선선해졌음을 느꼈다. 이제 곧 처서였다. 처서가 오면 상처도 마른다고 하더니, 상처가 마르는 정도가 아니라 꽃이 피는 격이었다.

목금의 제안대로 망허천을 넓히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품삯을 받아 갈 수도 있고, 아예 쌀로 받아 가도 괜찮았다. 덕분에 다들 추수를 앞둔 빈궁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게 되었다고 사또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다.

그런데 순조롭기만 하던 공사가 며칠 후 이상이 생기고 말았다. 한익범은 다시 밤중에 다급히 목금을 찾아왔다.

“공사하는 사람들이 자꾸 밤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고 물이 치솟아 오르기도 한다면서 무서워하고 있는데, 낭자가 한 번 살펴주었으면 좋겠기에, 야심한 밤에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네.”

“괜찮습니다. 그럼 지금 가면 되는 거죠?”

목금이 바로 쓰개치마를 집어 들었다.

“어, 어, 오늘 가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지만……. 그래, 함께 가자.”

처서가 가까워 밤공기는 청량하여 걷기 좋은 날이었다. 마침 보름이 지난 지도 얼마 안 되어 밤길도 밝았다.

“아, 저기 상사화가…….”

목금이 길 한쪽을 가리키다가 말을 삼켰다.

“저 꽃이 상사화라는 것인가? 낭자를 닮은 아름다운 꽃이군.”

목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나마 밤이라 얼굴색이 변한 걸 들키진 않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쓰개치마를 한껏 누르며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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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화는 잎이 말라 죽은 뒤에 꽃이 피어 꽃과 잎이 서로 사모하며 만나지 못한다는 뜻으로 그 이름이 만들어진 꽃이었다. 화려하고 아름답게 생긴 꽃이지만 그 이름은 한편으로 슬픈 이름이기도 했다. 구미호는 예전에 한익범과 목금은 신분이 달라 이어질 수 없다고 했는데, 문득 그 생각이 떠올라서 말을 다 못한 것이었다.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그리워만 하다가 지는 상사화라니. 사또 나리는 내년이면 한양으로 가실 터인데, 내 처지에 어찌 감히 그 꽃에 비하겠는가.’

공사를 하는 곳에 도착해보니 무슨 일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망허천 위에서 용과 어떤 여인이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용은 분명 예전에 여의주를 얻어 승천한 강철이었는데, 여인은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망허촌은 다 내 거라고! 당장 꺼져라!”

용이 외치자 여인이 금방 되받았다.

“이 위아래도 없는 무례한 놈아! 나를 보고 절을 하기는 커녕 감히 대들어! 죽고 싶은 게냐!”

“알 게 뭐야! 내 밥그릇을 빼앗으면 공주고 나발이고 다 필요없어!”

공주? 아, 예전에 동장군이 만나고 싶어 했던 용궁의 공주님이구나.

“무슨 일인지 알겠느냐?”

“저 용과 공주가 안 보이세요?”

“나한테는 물길이 막 치솟아오르는 것이 보이고, 괴괴하는 이상한 소리만 들리는구나. 용이나 공주는 보이지 않아.”

한익범은 목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잠잠해지지 않는다면, 백성을 구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엉망이 되어버린다. 꼭 해결해 주길 바라는 중이다.”

목금은 살며시 손을 빼내고는 하천가로 달려갔다.

“공주마마, 제 말 좀 들어주세요. 강철 용님도 잠깐 멈춰주세요.”

용궁 공주가 발을 멈췄다. 목금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말했다.

“공주마마는 동장군님과 약속한 만남을 기억하시나요?”

“기, 기억하지. 하필 그날 망허소가 얼어붙어서 약속 장소로 갈 수 없었어.”

“동장군님은 그때 크게 상심해서 지금 앓아누우셨대요.”

공주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뭐라고? 내가 일부러 그런 게 아냐!”

“알아요. 문병 가주실 거죠? 그날 동장군님이 공주님을 기다리다 마음이 얼어붙어 망허산 전체를 얼려버렸던 걸 기억하시나요? 공주님이 안 오신 게 아니라 가고 싶어도 물길이 막혀 못 가신 걸 알면 동장군님의 마음도 사르르 녹을 것입니다.”

“가고야 싶지만…….”

동장군은 하늘나라에 집이 있다. 용궁의 공주는 날지 못하니 갈래야 갈 수가 없었다. 목금이 힐끔 용을 쳐다보았다. 공주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좋아. 강철 용, 네가 날 하늘나라로 태워다준다면 망허천은 내가 양보할게.”

용은 펄쩍 뛰어오르며 좋아했다.

“약속한 겁니다. 그럼, 공주마마 제 등에 타서 제 뿔을 단단히 잡으세요.”

용은 지체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 확실히 자기 영지를 갖게 된 기쁨이 넘쳐 망허천에 용오름이 솟구쳤다. 목금은 둘이 사라지는 걸 보고 한익범에게 돌아왔다.

“용오름을 봤다. 용이 있었던 것이 맞구나.”

“그럼요. 이젠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정말 고맙다.”

“뭘요.”

볼 일이 끝났으니 더 있을 수 없었다. 목금은 집을 향해 달음박질쳤다. 그 뒤로 한익범이 외쳤다.

“낭자, 잘 생각하게나!”

목금은 달리느라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건지, 한익범의 외침 때문에 뛰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밤바람에 흔들리는 상사화 꽃잎이 어둠 속에서 붉은 등불처럼 아스라이 흔들리고 있었다. 잎이 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상사화. 비록 가닿지 못할 인연이라 한들, 저토록 붉고 찬란하게 피어나는 마음까지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집필자 소개

이문영
이문영
역사, 추리, SF, 판타지를 넘나들며 글쓰기를 하고 있다. 소설 뿐만 아니라 인문서 쪽으로도 출간을 하고 있으며, 청소년 글쓰기 사이트 글틴의 소설게시판지기로도 활동했다.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 파란미디어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여전히 활발한 창작활동을 겸하고 있다. 역사추리소설 『신라 탐정 용담』, 어린이 그림책 『색깔을 훔치는 마녀』, 역사소설 『정생, 꿈 밖은 위험해』, 어린이 인문서 『그게 정말이야?』, 역사인문서 『유사역사학 비판』을 비롯해서 MMORPG 『무혼』 등 여러 편의 게임 시나리오도 만든 바 있다.
“조선 남부의 수해를 구제하고자 구제금을 모아 보내기로 하다”

심상석, 녹동일기(鹿洞日記),
1933년 5월 13일(윤)

1933년 윤5월 13일 아침 훈시 시간에 송기식 선생은 황희 정승과 김종서의 일화를 들려주셨고, 오전에는 법제와 경제로 시험을 쳤는데, 문제는 ‘후견이란 무슨 뜻인가?’와 ‘상속의 두 큰 주요 유언이란 무엇인가?’였다.

오후에는 날이 더워서 모든 선생들과 학생들이 냇가를 찾아 목욕을 하고 돌아왔다. 심상석도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좋아 한시 한 수를 지었다.

녹동서원에 돌아온 후 심상석은 전날 저녁 신문에서 본 조선 남부의 수재 소식이 떠올랐다. 놀랍게도 수재민이 46,000명에 이르고, 손해액은 일천만 원이라는 소식을 듣고 심히 놀라고 슬퍼하였다. 명교학원의 선생님 이하 수강생 모두가 합동으로 구제금 5원을 내어 장차 신문사에 부치기로 했다.

“사람은 잡초를 뽑고 바람은 지붕을 뽑다”

김주현, 정강일기(定岡日記),
1940년 6월 5일 ~ 1940년 6월 20일

장마철이라 매일같이 비가 내린다. 덕분에 잡초의 기세가 등등하다. 사람만 괴로울 뿐이다. 김주현(金冑現)은 잠깐 비가 그친 사이에 뜰에 쭈그려 앉아 잡풀을 뽑았다. “뜰의 잡풀을 뽑지 않는 자는 반드시 어리석고 게으른 자일 것이다.” 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꽃 계단 위의 잡풀까지 뽑아낸 뒤 두엄에 버려두고 손을 탁탁 털어냈다.

집안의 잡풀도 돌아서면 또 자라나지만 진짜로 골치 아픈 것은 논과 밭의 잡초다. 농사꾼들은 다들 비를 맞아가며 밭에 나가 김을 매고 또 맸다. 김주현도 목화밭과 콩밭의 김 매는 상황을 시시때때로 확인했지만 비 때문에 작업이 어렵고 계속 지체되었다. 하지만 안 뽑으면 원래 심어놓은 작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잡초가 자라니 그만둘 수도 없다.

하늘이 보기에는 초가집 지붕도 잡초같이 보이나 보다. 심한 폭풍이 몰려와서는 김주현 집의 사랑채 지붕 이엉을 뽑아 버렸다. 심한 비까지 내려서 온 집안사람이 혼비백산이었다. 다른 집들도 비슷한 꼴을 당한 듯하다. 김주현은 사랑채에 내 놓은 책이 비를 맞을까봐 열심히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비가 조금 잦아들자마자 지붕을 곧바로 수선했다. 요란한 장마철이다.

“지속되는 가뭄과 왕실 기우제”

이우석, 하은일록(霞隱日錄),
1901년 6월 6일

계절은 어느덧 한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침부터 강렬한 태양 빛이 내려 쪼이던 초복 아침, 이우석은 최근 며칠간 보지 못했던 신문을 모아 요새 왕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기우제 기사였다. 최근 하지가 이미 지났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지속되고 있으니, 기우제 날짜를 기다릴 것 없이 빨리 기우제를 시행하자는 장례원(掌禮院)의 건의가 있었다고 한다. 황제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삼각산·목멱산·한강에다 첫 번째 기우제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비가 내리지 않았기에 두 번째 기우제는 날짜를 점치지 말고 지내되 헌관 이하 집사(執事)를 각별히 선택하여 임명하게 하셨다고 한다.

“연이은 흉년에 대신들의 녹봉도 깎이다”

노상추,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1815년 5월 17일 ~ 1815년 5월 19일

논바닥이 갈라지고 모판의 모는 다 말라비틀어졌다. 올해 농사도 망했다. 들으니 조정에서 관문이 내려와 선산 부사가 어제부터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지만 과연 하늘이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 간혹 늦게 이앙해도 큰 풍년이 드는 경우가 있다지만 그런 요행을 바랄 수 있을지. 노상추는 하늘을 바라보며 주름진 얼굴을 더 구겼다.

청운동으로 나가 이앙할 논을 바라보니 이곳 역시 물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앙은 할 수 있을 정도여서 두 마지기는 이앙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하지 못했으니 조만간 비가 내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조정에서는 백관에게 나누어주는 급료가 부족하여 대신의 녹봉도 2섬에 그쳤다고 한다. 나랏일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지 않았는가. 조정이 이럴진대, 강호에서 근심하는 것이 어찌 묘당보다 덜하겠는가.

“춘궁기에 관에서 나락과 콩을 꾸다”

김택룡,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
1616년 4월 12일 ~ 1616년 4월 14일

1616년 4월 12일, 날이 밝을 무렵 김택룡의 노비인 애남과 춘금이 환곡(還穀)을 나르러 구고로 갔는데, 정오가 안 되어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틀 뒤 4월 14일, 참봉 김효선(金孝先)과 진사 박회무가 택룡을 방문하였다. 두 사람은 안동부사 박동선(朴東善)이 환곡을 나누어 주려고 내성(奈城)의 현 창고[縣倉]에 오기 때문에 그를 만나러 간다고 하였다. 택룡도 안동부사에게 편지를 쓰면서 환곡을 요청하여 산장(山庄)의 아이들을 구원해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애남에게 명하여 그 곳으로 소를 끌고 가서 운송해오게 하였다.

저녁이 되자 애남이 환곡으로 내어 받은 나락과 콩을 가지고 왔다. 애남이 와서 전하길, ‘안동부사께서 재산을 거쳐 돌아가시는 길에 한곡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싶으시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택룡의 편지에 따로 답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다.

“천지간에 돌림병을 피할 곳이 없게 되다”

최흥원, 역중일기(曆中日記),
1756년 4월 2일

1756년 4월 2일. 최흥원이 머무는 곳에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함께 머무는 사촌 통숙이 병이 들었는데, 증후가 틀림없는 돌림병이었다. 최흥원은 사촌 아우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어쩌나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한편으로는 최흥원 자신은 다시 거처를 옮겨야 하나 고민하였으나 도저히 다른 곳으로 옮길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환후는 그나마 심해지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시는 집의 처소도 불안하였는데, 그 집의 주인이 돌림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림병을 피해서 어머니는 다른 집에, 최흥원도 임시 처소에 나와 있는데 병을 피해간 곳마다 환자가 하나씩 누워 있는 셈이니 과연 병을 피하는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유행병 반진의 치료법”

엄경수, 부재일기(孚齋日記),
1707년 5월 1일

1707년 5월 1일. 요사이 유행성 반진이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시작되어 서울까지 번졌다. 이 반진은 두창이랑 비슷하지만, 치료법은 매우 달랐다. 어떤 사람은 ‘두창은 서늘하게 해주고, 반진은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라고 했는데, 올해 유행하는 반진은 이전과는 또 달라서, 의원들이 치료법을 몰라 헤매다가 대부분 치료 시기를 놓치고는 뒤늦게 약성이 강한 약으로 병을 다스리게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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