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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년 국학자료 심층연구 Q&A ]

관찬사료 밖, 조선의 찐 풍경을 만나다
- 『운창일록』과 옛한글에 담긴 조선의 삶 -


Q1. 한국국학진흥원의 ‘국학자료 심층연구’를 간략히 소개해 주십시오.


국학자료 심층연구는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고문헌·고문서 자료 가운데 매년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정하여, 전통적인 문사철(文史哲)은 물론 최근에는 인문정보학까지 아우르는 여러 전공의 연구자들이 함께 심층적으로 파고드는 학제간 융복합 연구 사업입니다.([표] 참조)

가장 큰 차별성은 ‘반복과 축적’에 있습니다. 단발성 개별 연구가 아니라 한 해 동안 같은 자료를 두고 여러 차례(연 3회) 포럼을 거듭하며 논의를 심화시키고, 그 결과를 논문과 단행본으로 완성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또한 관찬사료 중심의 기존 연구와 달리 민간이 소장·기탁한 일기, 간찰, 고문서 등 1차 생활사 자료를 통해 관찬사료가 담아내지 못한 조선시대의 생생한 실상을 복원한다는 점, 그리고 같은 자료를 여러 전공의 시선으로 동시에 조명함으로써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연구 성과를 낸다는 점도 다른 연구 프로젝트와 구분되는 지점입니다.




Q2. 2026년 심층연구 주제인 『운창일록』과 ‘한글, 조선의 내밀한 풍경을 읽다’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운창일록(雲牕日錄)』은 19세기 청도지역의 처사형 유학자 운강 박시묵(朴時默, 1814~1875)이 1864년부터 1875년까지 매일의 일상을 기록한 일기로, 총 25권 11책 분량입니다. 강학과 교유, 서원 운영과 훼철, 병인양요와 위정척사 활동, 원납전 납부를 둘러싼 곡절 등 관찬사료에서는 볼 수 없는 19세기 영남 재지사족의 생생한 삶이 담겨 있습니다.


『운창일록』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운창일록』은 한국국학진흥원이 다년간의 번역사업을 거쳐 2025년 총 7책으로 출간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올해는 이 자료를 두고 여섯 분의 연구자가 각각 ▲박시묵의 인물 교유 양상 ▲계회와 향약을 통한 향촌공동체 활동과 교육 지원 ▲성학(聖學)과 소학(小學)의 실천 ▲『운창일록』에 나타난 문학 활동 ▲심학(心學)과 경(敬) 사상 ▲흥선대원군 집권기 청도 유학으로서의 박시묵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4월 17일 1차 포럼에 이어 지난 7월 9일 청도 운강고택ㆍ만화정 등 현장에서 2차 포럼까지 마쳤습니다. 10월에 3차 포럼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국역)운창일록』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한글, 조선의 내밀한 풍경을 읽다’는 본원이 소장한 옛한글 자료를 통해 조선시대 여성과 서민의 생활문화를 조명하는 주제입니다. ▲한글 기록물을 통한 여성교육 ▲재령이씨 존재종택 장계향의 한글편지가 지닌 국어학적 특징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 대한 문학적 대응 ▲조선 후기 민원·매매·분재 관련 한글 고문서 ▲본원 소장 옛한글소설 자료 현황 등을 각각의 연구자가 다루고 있으며, 이 주제는 4월 17일 1차 포럼을 마쳤고, 8월 2차 포럼, 10월 3차 포럼을 앞두고 있습니다.


장계향의 한글편지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격동기 지방 유림의 대응을 보여주는 『운창일록』”
“2026년은 훈민정음 반포 580돌, ‘가갸날’ 제정 100년, 한글점자 ‘훈맹정음’ 반포 100돌”

Q3. 『운창일록』과 ‘한글 기록’을 선정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운창일록』은 한국국학진흥원이 오랜 기간 공을 들여 번역해 2025년 7책으로 출간한 성과물입니다. 관찬사료에는 드러나지 않는 19세기 영남 처사형 선비의 일상과 사상, 그리고 서원 훼철·병인양요·원납전 같은 격동의 시대에 지방 유림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이미 검증된 자료이기에 선정했습니다.

한글 자료는 본원이 다수의 옛한글 기록물을 소장하고 있고, 그중에는 세계기록유산 아시아태평양지역목록에 등재된 내방가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2026년은 훈민정음 반포 580돌이자, 1926년 조선어연구회가 훈민정음 창제를 기념해 ‘가갸날’(오늘날 한글날의 기원)을 제정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며, 송암 박두성 선생이 완성한 한글점자 ‘훈맹정음’ 반포 100돌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한글과 관련하여 뜻깊은 해를 맞아 본원 소장 한글 자료의 가치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이 주제를 선정했습니다.




Q4. 〈심층연구〉가 올해로 16번째를 맞았습니다. 그간의 연구 가운데 주목할 만한 성과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심층연구를 통해 새롭게 밝혀진 내용이나 의미 있는 성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그간 심층연구를 통해 다양한 성과가 나왔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다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사업 초창기인 2012년과 2013년에 나온 네 권의 단행본입니다. 『국학자료 심층연구총서 1-도산서원과 지식의 탄생』, 『국학자료 심층연구총서 2-선비의 멋, 규방의 맛』(2012)과 『국학자료 심층연구총서 3-조선 서원을 움직인 사람들』, 『국학자료 심층연구총서 4-목판의 행간에서 조선의 지식문화를 읽다』(2013)가 그것입니다.


『심층연구총서』 시리즈 1~4


이 네 권은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한 지식 생산과 강학 활동, 『수운잡방』·『음식디미방』 등 고문헌을 통한 조선 음식문화, 도산서원을 실제로 운영했던 인물들의 관계망, 그리고 목판을 통해 본 조선의 지식문화라는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었지만, 공통적으로 사학·철학·국어학·식품영양학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한 팀을 이루어 자료를 함께 들여다보고 심도있는 토론을 통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특히 사업 초창기에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한자리에 모여 같은 자료를 함께 읽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단순한 개별 논문의 합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시각을 갖춘 좋은 단행본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이 초기 성과들은 심층연구가 지향해야 할 원형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계속 되짚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5. 향후 심층연구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싶은 주제나 분야, 자료가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그동안 한국국학진흥원이 발간한 국학자료 목록집은 110권이 넘습니다. 이는 각 문중이 본원에 기탁한 주요 자료를 정리한 결과물입니다. 그런데 아직 목록집으로 정리되지 않은 좋은 자료를 기탁해 주신 문중들도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문중 단위의 기탁자료를 발굴하여 심층연구의 대상으로 삼고 싶습니다. 목록집이 그러하듯 개별 자료가 아니라 한 문중이 수백 년간 축적해 온 자료군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조명할 때 그 문중과 지역사회의 삶이 입체적으로 드러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업은 연구자만을 위한 사업이 아닙니다. 자료의 가치를 발굴하고 이를 학계에 보급하여, 궁극적으로는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 본질입니다. 나아가 이렇게 축적된 성과가 전시, 콘텐츠 개발, 지역 문화유산 활용 사업 등 다양한 후속 사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표] 국학자료 심층연구 주제 및 발간도서 목록(2011~2026)


연도 포럼주제 발간도서
2011 도산서원과 지식의 탄생
선비의 멋, 규방의 맛
2012 조선 서원을 움직인 사람들 도산서원과 지식의 탄생
목판의 행간에서 조선의 지식문화를 읽다 선비의 멋, 규방의 맛
2013 도산서원을 통해 본 조선후기사회사 조선 서원을 움직인 사람들
일기를 통해 본 조선후기사회사 목판의 행간에서 조선의 지식문화를 읽다
2014 조선후기 서원의 위상 도산서원을 통해 본 조선후기사회사
임진왜란과 지방사회의 재건 일기를 통해 본 조선후기사회사
2015 일기에서 역사를 엿보다 조선후기 서원의 위상
조선유학의 이단비판 임진왜란과 지방사회의 재건
2016 일기를 통해 본 양반들의 일상세계 일기에서 역사를 엿보다
소송과 분쟁으로 보는 조선사회 조선유학의 이단비판
2017 조선의 서당에서 배우는 사회적 교육의 지혜 일기를 통해 본 양반들의 일상세계
일기의 행간에서 조선의 삶과 문화 깊이 읽기 소송과 분쟁으로 보는 조선사회
2018 분재기에 나타난 조선중기 상속문화와 가족제도 조선의 서당에서 배우는 사회적 교육의 지혜
일기를 통해 본 18세기 대구사림의 일상세계 일기의 행간에서 조선의 삶과 문화 깊이 읽기
2019 성재일기 분재기에 나타난 조선중기 상속문화와 가족제도
해주일록 일기를 통해 본 18세기 대구사림의 일상세계
2020 함벽당간찰 성재일기
모당일기 해주일록
2021 봉경 이원영 함벽당간찰
하와일록 모당일기
2022 조성당일기 봉경 이원영
홍범연의 하와일록
2023 전쟁미시사 조성당일기
일기로 본 사족의 의례생활 홍범연의
2024 경설유편 전쟁미시사
조선 여성의 일상 일기로 본 사족의 의례생활
2025 위기와 대응 경설유편
일기로 보는 도산서원 조선 여성의 일상
2026 운창일록 위기와 대응
한글, 조선의 내밀한 풍경을 읽다 일기로 보는 도산서원
2027 운창일록
한글, 조선의 내밀한 풍경을 읽다



Interviewee

이남옥 책임연구위원
“조선 남부의 수해를 구제하고자 구제금을 모아 보내기로 하다”

심상석, 녹동일기(鹿洞日記),
1933년 5월 13일(윤)

1933년 윤5월 13일 아침 훈시 시간에 송기식 선생은 황희 정승과 김종서의 일화를 들려주셨고, 오전에는 법제와 경제로 시험을 쳤는데, 문제는 ‘후견이란 무슨 뜻인가?’와 ‘상속의 두 큰 주요 유언이란 무엇인가?’였다.

오후에는 날이 더워서 모든 선생들과 학생들이 냇가를 찾아 목욕을 하고 돌아왔다. 심상석도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좋아 한시 한 수를 지었다.

녹동서원에 돌아온 후 심상석은 전날 저녁 신문에서 본 조선 남부의 수재 소식이 떠올랐다. 놀랍게도 수재민이 46,000명에 이르고, 손해액은 일천만 원이라는 소식을 듣고 심히 놀라고 슬퍼하였다. 명교학원의 선생님 이하 수강생 모두가 합동으로 구제금 5원을 내어 장차 신문사에 부치기로 했다.

“사람은 잡초를 뽑고 바람은 지붕을 뽑다”

김주현, 정강일기(定岡日記),
1940년 6월 5일 ~ 1940년 6월 20일

장마철이라 매일같이 비가 내린다. 덕분에 잡초의 기세가 등등하다. 사람만 괴로울 뿐이다. 김주현(金冑現)은 잠깐 비가 그친 사이에 뜰에 쭈그려 앉아 잡풀을 뽑았다. “뜰의 잡풀을 뽑지 않는 자는 반드시 어리석고 게으른 자일 것이다.” 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꽃 계단 위의 잡풀까지 뽑아낸 뒤 두엄에 버려두고 손을 탁탁 털어냈다.

집안의 잡풀도 돌아서면 또 자라나지만 진짜로 골치 아픈 것은 논과 밭의 잡초다. 농사꾼들은 다들 비를 맞아가며 밭에 나가 김을 매고 또 맸다. 김주현도 목화밭과 콩밭의 김 매는 상황을 시시때때로 확인했지만 비 때문에 작업이 어렵고 계속 지체되었다. 하지만 안 뽑으면 원래 심어놓은 작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잡초가 자라니 그만둘 수도 없다.

하늘이 보기에는 초가집 지붕도 잡초같이 보이나 보다. 심한 폭풍이 몰려와서는 김주현 집의 사랑채 지붕 이엉을 뽑아 버렸다. 심한 비까지 내려서 온 집안사람이 혼비백산이었다. 다른 집들도 비슷한 꼴을 당한 듯하다. 김주현은 사랑채에 내 놓은 책이 비를 맞을까봐 열심히 거두어 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비가 조금 잦아들자마자 지붕을 곧바로 수선했다. 요란한 장마철이다.

“지속되는 가뭄과 왕실 기우제”

이우석, 하은일록(霞隱日錄),
1901년 6월 6일

계절은 어느덧 한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아침부터 강렬한 태양 빛이 내려 쪼이던 초복 아침, 이우석은 최근 며칠간 보지 못했던 신문을 모아 요새 왕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기우제 기사였다. 최근 하지가 이미 지났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지속되고 있으니, 기우제 날짜를 기다릴 것 없이 빨리 기우제를 시행하자는 장례원(掌禮院)의 건의가 있었다고 한다. 황제는 이 건의를 받아들여 삼각산·목멱산·한강에다 첫 번째 기우제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역시 비가 내리지 않았기에 두 번째 기우제는 날짜를 점치지 말고 지내되 헌관 이하 집사(執事)를 각별히 선택하여 임명하게 하셨다고 한다.

“연이은 흉년에 대신들의 녹봉도 깎이다”

노상추,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1815년 5월 17일 ~ 1815년 5월 19일

논바닥이 갈라지고 모판의 모는 다 말라비틀어졌다. 올해 농사도 망했다. 들으니 조정에서 관문이 내려와 선산 부사가 어제부터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지만 과연 하늘이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 간혹 늦게 이앙해도 큰 풍년이 드는 경우가 있다지만 그런 요행을 바랄 수 있을지. 노상추는 하늘을 바라보며 주름진 얼굴을 더 구겼다.

청운동으로 나가 이앙할 논을 바라보니 이곳 역시 물이 충분하지 않았다. 그나마 이앙은 할 수 있을 정도여서 두 마지기는 이앙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하지 못했으니 조만간 비가 내리기만을 바랄 뿐이다. 조정에서는 백관에게 나누어주는 급료가 부족하여 대신의 녹봉도 2섬에 그쳤다고 한다. 나랏일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지 않았는가. 조정이 이럴진대, 강호에서 근심하는 것이 어찌 묘당보다 덜하겠는가.

“춘궁기에 관에서 나락과 콩을 꾸다”

김택룡,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
1616년 4월 12일 ~ 1616년 4월 14일

1616년 4월 12일, 날이 밝을 무렵 김택룡의 노비인 애남과 춘금이 환곡(還穀)을 나르러 구고로 갔는데, 정오가 안 되어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틀 뒤 4월 14일, 참봉 김효선(金孝先)과 진사 박회무가 택룡을 방문하였다. 두 사람은 안동부사 박동선(朴東善)이 환곡을 나누어 주려고 내성(奈城)의 현 창고[縣倉]에 오기 때문에 그를 만나러 간다고 하였다. 택룡도 안동부사에게 편지를 쓰면서 환곡을 요청하여 산장(山庄)의 아이들을 구원해 주도록 하였다. 그리고 애남에게 명하여 그 곳으로 소를 끌고 가서 운송해오게 하였다.

저녁이 되자 애남이 환곡으로 내어 받은 나락과 콩을 가지고 왔다. 애남이 와서 전하길, ‘안동부사께서 재산을 거쳐 돌아가시는 길에 한곡에서 만나 이야기하고 싶으시답니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택룡의 편지에 따로 답장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다.

“천지간에 돌림병을 피할 곳이 없게 되다”

최흥원, 역중일기(曆中日記),
1756년 4월 2일

1756년 4월 2일. 최흥원이 머무는 곳에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함께 머무는 사촌 통숙이 병이 들었는데, 증후가 틀림없는 돌림병이었다. 최흥원은 사촌 아우의 목숨이 위태로워지면 어쩌나 가슴이 조마조마하였다. 한편으로는 최흥원 자신은 다시 거처를 옮겨야 하나 고민하였으나 도저히 다른 곳으로 옮길 만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환후는 그나마 심해지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시는 집의 처소도 불안하였는데, 그 집의 주인이 돌림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돌림병을 피해서 어머니는 다른 집에, 최흥원도 임시 처소에 나와 있는데 병을 피해간 곳마다 환자가 하나씩 누워 있는 셈이니 과연 병을 피하는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유행병 반진의 치료법”

엄경수, 부재일기(孚齋日記),
1707년 5월 1일

1707년 5월 1일. 요사이 유행성 반진이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시작되어 서울까지 번졌다. 이 반진은 두창이랑 비슷하지만, 치료법은 매우 달랐다. 어떤 사람은 ‘두창은 서늘하게 해주고, 반진은 따뜻하게 해주어야 한다.’라고 했는데, 올해 유행하는 반진은 이전과는 또 달라서, 의원들이 치료법을 몰라 헤매다가 대부분 치료 시기를 놓치고는 뒤늦게 약성이 강한 약으로 병을 다스리게 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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