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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의 사람과 500마리의 말, 세자 일행이 압록강을 건너다
1644년 3월 16일,
소현세자(昭顯世子)
와 세자빈께서 묘시(卯時:오전 5시〜7시)에
의주(義州)
를 출발하여 압록강 가에 행차를 멈추고
중강(中江)
을 건너
삼강(三江)
건너편
구련성(九連城)
근처의 막사에 도착해 묵으셨다.
재신과 의관이, 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아침에 소현세자께 문안을 드리니 알았다고 답하셨다. 애초에는 18일이 강을 건너기 좋은 날이라고 해서 그 날 건너려고 했는데, 청나라 장수가 행차를 서둘러서 오늘 의주를 출발하게 되었다. 바다에서 대포 소리가 났다는 보고가 있었다. 만에 하나 걱정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서 병마절도사가 몇 명의 포수를 거느리고 소현세자를 모시고 왔다.
재신이 이 일에 대해 인조대왕께 보고서를 보냈다. 감사와 의주 부윤
홍탁(洪琢)
도 역시 소현세자를 모시고 왔다. 소현세자와 세자빈의 음식을 준비하는 관리로 영변 부사
김형(金瀅)
을, 민간의 말을 빌려 쓰는 일을 준비하는 관리로 맹산 현감
이완(李浣)
을 임시로 정해 각각 그 일을 맡겼다. 음악을 연주하거나 깃발을 드는 등
의장대(儀仗隊)
의 인원 모두는 뒤쳐졌다. 압록강을 건넌 수는 사람이 거의 1,000명에 이르고 역관의 말이 80여 필, 민간에서 빌린 말이 400여 필이었다.
재신과 의관이, 또 세자시강원에서 저녁에 소현세자께 문안을 드리니 알았다고 답하셨다.
개요
배경이야기
원문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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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이야기
출전 :
심양일기(瀋陽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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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
주제 : 사행, 학문
시기 : 1644-03-16 ~
동일시기이야기소재
장소 : 평안북도 의주군
일기분류 : 사행일기
인물 : 소현세자, 병마절도사, 홍탁, 김형, 이완
참고자료링크 :
승정원일기
웹진 담談 17호
웹진 담談 14호
웹진 담談 16호
웹진 담談 15호
조선왕조실록
◆ 소현세자의 조선 - 청 생활
소현세자가 심양에 도착한 것은 1637년 4월이었다. 심양에는 소현세자를 비롯한 왕실 가족,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의 관리, 사역원 역관, 선전관, 의관 등이 있었는데, 이들을 합하면 총 200명에 가까웠다. 심양에서 이들은 새로 건축한 심양관소, 즉 심관(審館)에서 생활했다. 심관은 양국 간의 각종 연락사무나 세폐와 공물의 조정, 포로를 중심으로 한 민간인 문제 등을 처리하는 일종의 대사관 같은 기능을 했다. 심양 생활은 단조로운 고국에서의 생활과 달리 무척 다양하고 바빴다. 소현세자는 조선과 청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그 나라 고관들과 친분을 맺었다. 또 뇌물외교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청과의 무역이나 둔전(屯田) 경영에 참여하여 재력을 비축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조선인 포로를 구출해 냈다. 부인인 세자빈 강씨는 영리하고 사업 수완이 좋아 외교적인 문제는 소현세자가, 경제적인 문제는 세자빈 강씨가 주도하였다. 청은 중국 통일의 야망이 있었으므로 조선의 도움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세자를 적극적으로 포섭하고자 했다. 조선을 담당하고 있던 용골대는 세자와 마음을 터놓는 사이처럼 지냈다. 처음 심관 생활은 엄중한 감시와 제한 속에 보내야 했지만, 점차 청은 세자에게 각별하게 대했다. 몽고 각지의 행사에도 초대했고 정기적인 연회에도 세자 부부를 참석시켰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조선지원병과 물자요구가 있었고 이를 조선에 보고해야 하는 세자의 입장은 항상 바늘방석이었다. 1644년 마침내 청은 북경을 차지했고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자살했다. 더 이상 청은 조선의 왕세자를 인질로 묶어둘 이유가 없어졌고, 소현세자는 조선으로 귀국할 수 있었다. 중원을 차지한 청의 힘을 지켜 본 소현세자는 삼전도의 굴욕만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인조와 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광해군의 외교정책에 반대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인조와 서인세력은 소현세자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오랜 인질 생활을 마치고 조선에 귀국했지만, 인조는 소현세자를 반기지 않았다. 어느덧 인조에게 소현세자 내외는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대상으로 비춰지고 있었다. 귀국 전부터 소현세자가 왕이 되고자 청나라를 부추겨 부친인 인조를 심양에 오게 만드는 공작을 하고 있다는 풍문이 돌았다. 인조는 청이 왕위를 세자에게 양위하라고 할까 봐 불안해했다. 소현세자는 인조의 냉담한 환대 속에 귀국했고, 그가 가져온 청나라 물건은 인조의 불쾌감을 가중시켰다. 인조에게 비친 소현세자 내외는 청에서 고초를 겪다 온 것이 아닌 호강을 하다 온 것처럼 보였다. 결국 소현세자는 가져온 채단(彩段) 4백 필과 황금(黃金) 19냥을 호조로 돌려보냈다. 소현세자는 귀국하기 직전 70일 정도를 북경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독일 출신의 신부인 아담 샬을 만났다. 소현세자는 아담 샬과 친교를 맺으며 그로부터 학술과 종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근 8년이나 외롭게 외국 생활을 했던 소현세자로서는 벽안의 외국인이 흥미롭기도 하고 그가 가진 식견이 놀랍기도 했다. 아담 샬은 역대 중국에서 외국인으로는 가장 고위직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중국 포교 1세대인 마테오 리치의 뒤를 이어 1622년 중국으로 건너가 가톨릭 포교활동에 힘쓰며 천문·역법에도 밝아 월식(月蝕)을 예측하여 황제의 환심을 얻었다. 명나라 말에 북방의 청에 대항하기 위해 대포를 주조하기도 하였으나, 명이 망하고 청이 집권한 이후에는 다시 청 세조의 신임을 받아 천문 관측을 담당하는 흠천감의 책임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러한 아담 샬의 지위로 인해 소현세자는 천주당과 문연각에서 그를 자유롭게 만날 수 있었다. 아담 샬도 소현세자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여겼다. 세자가 희망하는 대로 서양의 천문학을 알려주고 각종 천주교 서적과 관측기구를 선물로 주었다. 이때 소현세자가 아담 샬로 받은 선물은 천주상·지구의·천문서 등이었다. 소현세자는 천주상을 벽에 걸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고백했다. 아담 샬은 소현세자를 만나면서 조선에 천주교를 선교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소현세자는 자신이 귀국하면 조선에서 서양과학 서적을 간행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또한 세자는 북경의 천주당 주교인 아담 샬에게 자신과 함께 조선으로 갈 서양인 신부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서양인 신부는 청에서도 부족한 상황이었고, 소현세자는 부득이 천주교 신자인 중국인 환관을 데리고 귀국하였다.
◆ 원문 번역
1644년 3월 16일 맑았다. 소현세자(昭顯世子)와 세자빈께서 묘시(卯時: 오전5시〜7시)에 의주(義州)를 출발하여 압록강(鴨綠江)가에 행차를 멈추고 중강(中江)을 건너 삼강(三江) 건너편 구련성(九連城) 근처에 막사에 도착해 묵으셨다. 재신과 의관이, 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서 아침에 소현세자께 문안을 드리니 알았다고 답하셨다. 애초에는 18일이 강을 건너기 좋은 날이라고 해서 그 날 건너려고 했는데 청나라 장수가 행차를 서둘러서 오늘 의주를 출발하게 되었다. 바다에서 대포 소리가 났다는 보고가 있었다. 만에 하나 걱정스러운 사태가 발생할 것에 대비해서 병마절도사가 몇 명의 포수를 거느리고 소현세자를 모시고 왔다. 재신이 이 일에 대해 인조대왕께 보고서를 보냈다. 감사와 의주 부윤 홍탁(洪琢)도 역시 소현세자를 모시고 왔다. 소현세자와 세자빈의 음식을 준비하는 관리로 영변 부사 김형(金瀅)을, 민간의 말을 빌려 쓰는 일을 준비하는 관리로 맹산 현감 이완(李浣)을 임시로 정해 각각 그 일을 맡겼다. 음악을 연주하거나 깃발을 드는 등 의장대(儀仗隊)의 인원 모두는 뒤쳐졌다. 압록강을 건넌 수는 사람이 거의 1,000명에 이르고 역관의 말이 80여필, 민간에서 빌린 말이 400여필이었다. 재신과 의관이, 또 세자시강원에서 저녁에 소현세자께 문안을 드리니 알았다고 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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