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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일기


담장 넘어 겁탈을 시도한 자들, 수일만에 풀려나다


1613년 7월 14일, 김령은 아침부터 좋지 않은 소식을 들었다. 지난 11일 밤, 지사(池沙)의 우성헌(禹成憲) 등 대여섯 명이 밤에 이사첨의 집에 잠입했는데, 이사첨의 계집종을 겁탈하기 위해서였다. 담장을 뚫고 들어갔으니, 도적과 다를 것이 없었다. 주인집 종이 알고 고함을 질러서 잡았지만, 온 집안이 크게 놀랐고, 사첨의 아내는 급하게 방에서 나오다가 떨어져서 다치기 까지 하였다. 무뢰배들은 잡힌 놈도 있고, 도망친 놈도 있었으며, 우두머리는 옷이며 갓을 모두 버리고 도망가서 놓치고 말았다.

다음날 관청에 고소를 하니, 수령이 잠시 가두었다가 바로 풀어주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분명 술자리에서 느슨하게 처벌해 달라는 청탁을 받아들였을 것으로 추측했다. 관아에 뇌물을 바친 자나, 이를 받아들이고 죄인을 풀어준 수령 모두 한 통속, 똑같은 자들이었다.

사람들은 사첨의 종에게, “이것이 무슨 죄이겠느냐, 서울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라며 자조적으로 말했다.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저자 : 김령(金坽)
주제 : 겁탈, 청탁
시기 : 1613-07-14 ~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사첨의 종, 우성헌 무리, 수령,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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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소개

글 그림 | 권숯돌
권숯돌
197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방송작가 일을 하다가
이십대 후반에 심리학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와서는 지금까지 눌러살고 있다.
글과 그림으로 소통하는 일을 좋아한다.
2019년 다음웹툰에 연재된 독립운동가 윤희순 선생의 일대기 <희순할미> 스토리를 썼다.

의병장 희순
노래로, 총으로 싸운
조선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권숯돌 작가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권숯돌 글 / 정용연 그림

“구걸하는 친구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다”

오희문, 쇄미록, 1599-04-28

1599년 4월 28일, 오늘 남씨 집으로 시집간 누이의 종 덕룡이가 평강현 관아에서 왔다. 윤겸이의 편지를 보니, 남씨 집 누이가 여러 물건을 보내달라고 청해서 몇몇 물품을 보낸다고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요즘에 친구들의 구걸하는 편지가 구름처럼 모여드는데 여기에 응할 수가 없어서 모두 그대로 보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해 왔다. 반드시 이를 두고 노여워하거나 원망하는 자들이 많은 것이라, 몹시 민망하다고 한다.
거기다가 얼마 전 쇄마차사원으로 공무를 수행하던 중에 나라의 말 3필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비록 백성들의 말을 거두어 보내서 숫자를 맞추기는 했으나, 아마 파면당할 것이라 지금 파면 명령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다. 윤겸의 말대로 만일 파면이라도 당하면 오희문 일가 식구들은 반드시 굶주려서 오래지 않아 모두 쓰러질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걱정하면 무엇 하겠는가. 관아의 상황도 저축이 아예 없어 뚜렷한 방도가 없으니, 차라리 시원하게 파면당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겸이 과거에 급제하고 또 난리 통에 지방 수령직을 맡아 일가 식구들의 생계가 해결되었다 생각하고 좋아한 것이 엊그제 같았다. 그러나 거듭 지인들의 부탁에 시달리고, 상급자가 미워하여 각종 괴로운 공무에 수시로 동원되니, 과연 사람 일은 좋은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오희문만 하더라도 얼마나 많은 청탁을 받았던가. 오희문은 새삼 아들 윤겸이 안쓰러워져 한숨을 쉬었다.

“아들 윤함의 처가댁이 도둑을 맞다”

오희문, 쇄미록, 1600-03-18

1600년 3월 18일, 오늘 오희문은 황해도에 살고 있는 아들 윤함의 편지를 받았다. 윤함 집의 식구들은 무탈하게 잘 지내고 아무런 일도 없다고 한다. 다만 오직 한 명밖에 없는 종 논금이가 최근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장차 집안의 생계를 어떻게 꾸려갈지 걱정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아내의 집에서 기르던 소 2마리와 말 1마리를 도둑맞았다고 한다. 해주 고을은 부역이 너무 번거로운데다가 가계는 완전히 파산해 버려서 수습할 여력이 없다고 한다. 아마 장차 유리걸식 하게 될 것이라 한다. 윤함이 황해도로 가서 살게 된 것은 처가댁 때문이었는데, 이제 처가댁 가산이 탕진하게 되었으니 아마도 모두 윤함이 생계를 책임져야 할 모양이었다. 집안 사정이 이러하여 이번에 서울에서 열리는 별시는 참가도 못하였다고 한다. 종도 없고, 말마저 도둑맞았으니 올라올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편지를 읽은 오희문은 괴로운 심정을 참을 수 없었다. 오희문 집의 곤궁함이 극에 달하여, 타향을 떠돌며 일정한 거처가 없어서 아들로 하여금 아직도 처가에 머물러 있게 하고 끝내는 유리걸식 하게 만들 모양이었으니 근심스럽고도 민망한 일이었다. 어서 집안을 일으켜 아들 윤함의 식구들도 옮겨와 살도록 해야겠으나 방법이 없으니 답답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였다.

“흉흉한 민심-푸른 보리밭은 풍년을 노래했으나, 수확한 보리를 초적에게 빼앗기다”

김령, 계암일록, 1624-06-01

1624년 6월 1일, 김령은 아침에 아들 김요형을 시켜 사당에 보리를 올렸다. 이 해 예안현의 보리밭은 작황이 매우 좋았다. 종들을 보내 수확했는데, 초적(草賊)이 훔쳐간 것이 절반이 넘어 거의 4, 5섬 쯤 되었다. 이는 근래에 없던 일로, 백성들의 풍속이 더욱 각박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진 백성들을 이렇게 만든 것은 모두 관속(官屬)과 완악한(=성질이 사나운) 무뢰배들이었다.

“조선을 배신한 승려 성택의 이야기”

오희문 쇄미록 1592-08-26

1592년 8월 26일, 일전에 의병장 고경명이 전사할 당시 한 중이 의병으로 들어오고자 하여 그에게 물 긷고 밥 짓는 일을 책임 지웠다고 한다. 그런데 싸움에 나가는 날에 이르러서 이 중이 왜적과 내통하여 의병대장을 살해하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의병들이 크게 패하였다. 또 용담, 금산 두 고을에 도망하여 숨었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중이 적과 내통하여 적의 무리를 인도하여 여러 산을 수색하고 인민을 살해하며 재물을 노략질하였다고 한다. 또 보성군수가 9일 동안의 싸움을 할 당시, 이 중이 보성군수를 살해하고 그가 차고 있는 대장의 도장을 빼앗으려 계획하였다고 한다. 실로 그 흉악함이 왜적보다 몇 배 더 심하다고 할 만하였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분하게 여겨 그를 죽여 그 고기를 먹고자 했다.
그런데 이번에 보성군수가 우연히 이 중을 사로잡아 문초하였는데, 앞의 일이 모두 탄로 나서 방어사에게 압송되었다고 한다. 이 중의 말에 의하면 금산에 주둔한 왜적은 먹을 것이 이미 다 떨어져서 날벼를 베어 먹고 연명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의 이름은 성택이라 하였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왜적 30명을 죽여도 이 중 하나를 죽인 공에 못 미친다고 하였다. 그런 배신자를 잡아들였으니 통쾌하고 또 통쾌한 일이었다.

“탐욕스러운 풍기군수, 백성의 삶을 손아귀에 움켜쥐다”

김령, 계암일록, 1622-05-21

풍기군수(豊基郡守) 이잠(李埁). 그는 타고나길 어리석고 비루하였다. 대북(大北)파에 붙어 아첨하며, 대북이 하고자 하는 일에는 항상 팔을 휘두르며 나서서 참여하였다. 군수가 되고나서는 부정하게 재물을 거둔 일이 천만의 말로도 형용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민간의 장정을 징발하여 자신의 집을 짓고, 백성들이 세금으로 내는 무명베를 공공연히 그의 집으로 거두어간 것이 몇 번이나 되는지 알 수도 없다. 게다가 관부(官府)의 온갖 물건들을 민간에서 거두어들여 일일이 그의 수중에 움켜쥐었다. 이런 염치없고 양심 없는 작자가 수령이 되어 앉아있으니, 백성들이 어찌 곤궁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령은 통탄스러웠다. 가까운 경내에 찾아보려 해도 이토록 흉악한 자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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