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3년 6월 6일, 권상일은 어느 날 이웃 마을의 소식을 들었다. 상주의 인근 고을이었던 용궁현의 월오리라는 곳에 호랑이가 출현했던 것이다. 마을 앞산에 조그마한 소나무 숲이 있었다. 그런데 대낮에 호랑이가 출현하여 그곳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일상 호랑이가 나타나게 되면 몸을 피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들은 몸을 피하지 않고 구경하기에 바빴다.
호랑이는 마을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신기한 대상으로 비쳐졌던 모양이었다. 양반들에게야 호랑이는 백성을 위해서 해로운 대상이므로 당연히 없애야 하는 포호(捕虎)의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에게 호랑이는 신비의 동물이면서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결국 호랑이를 보러온 마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 물려서 부상을 입은 자가 다수 출현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는 권상일이 잘 알고 지내던 안필세도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걱정이 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양반이었던 권상일에게 호랑이는 당연히 처치해야 할 동물이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사실에 너무 놀라고 그 피해 사실에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출전 : 청대일기(淸臺日記)
저자 : 권상일(權相一 )
주제 : 호랑이 피해
시기 : 1753-06-06
장소 : 경상북도 예천군
일기분류 : 사행일기
인물 : 권상일
사냥꾼들은 산을 신성한 성지로 여긴다. 속되고 더러운 인간 세상과 달리, 산은 깨끗하고 신령스럽다는 것이다. 또 산에는 주인인 산신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의 허락을 얻어야 짐승을 잡으며, 그가 보호해 주어야 아무 탈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산에 들어가면 먼저 산신의 허락을 얻기 위한 고사(山祭)를 올린다. 백두산 정계비를 세우러 가던 일행도 백두산에 들어가면서 산신제를 지내고 올라간 기록이 있다. 짐승을 잡은 뒤에도 반드시 감사의 의례를 지냈다. 위기를 넘긴 뒤에 감사의 제사를 올린 이 일기의 기록 또한 이러한 풍습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여진다. 20세기 초까지도 사냥꾼이 호랑이를 잡으면 그 고을의 산신령을 잡았다는 죄목으로 수령이 형식적인 볼기를 세 차례 때리는 것이 관례였다. 예컨대 형식적이 태형(笞刑)으로 세 차례의 매를 맞고 나서, 호랑이의 크기에 따라 닷 냥에서 2,30냥의 상금을 받았다. 일반에서도 맹수의 왕인 호랑이야말로 산에 사는 신령(神靈)이라고 믿었으며, 이들의 탄생지라고 일컬어지는 백두산을 영산(靈山)으로 여겼다. 무신도의 하나인 산신도(山神圖)에 산신이 호랑이를 심부름꾼으로 거느린 모습으로 등장하는 까닭도 이에 있다.
1611년 4월 26일, 칠흑같이 어두운데 호랑이 울음소리가 진동했다.
도산서원, 여강서원, 이산서원 향교의 유사들이 여강사원에 모여서 5월 11일에 열릴 소회를 논의하고 있었다.
출전 : 계암일록(溪巖日錄)
저자 : 김령(金坽)
주제 : 동식물, 호랑이
시기 : 1611-04-26 ~
장소 : 경상북도 안동시
일기분류 : 생활일기
인물 : 김령, 향교 유사들
시기 | 동일시기 이야기소재 | 장소 | 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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