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에피소드 1에서 박상민, 조태훈 그리고 염미정은 카페 창가에 일렬로 나란히 앉아 있다. 사내 동호회 가입 압박에 시달리던 세 사람은 ‘해방클럽’이라는 동호회를 결성하고, 첫 모임을 하는 중이다.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창밖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세 사람, 그들이 만든 ‘해방클럽’의 행동강령은,
1. 행복한 척하지 않겠다.
2. 불행한 척하지 않겠다.
3. 정직하게 보겠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 (출처: JTBC)
부칙은 ‘1. 조언하지 않는다. 2. 위로하지 않는다’ 이다. 강요된 소속감에 반기를 들 듯 ‘해방클럽’의 행동강령은 직장인의 사회적 가면을 벗기고 시작한다. 행복한 척, 불행한 척하지 않고, 조언하거나 위로하지 않으며 정직하게 사회생활 하는 것이 가능할까?
에피소드 7에서 ‘해방클럽’ 참관을 온 사내 행복지원센터 소향기는, 하루를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끊임없이 시계를 본다는 박상민의 말을 듣고, 위로를 건넨다. 우리는 《나의 해방일지》 속 소향기처럼 때때로 타인의 삶에 대해 억지 공감과 영혼 없는 위로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혹은 그렇게 해야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방클럽’의 행동강령과 부칙은 쉬운 것 같지만 지키기 어려운 규칙이다.
《나의 해방일지》 속 염미정의 주변 인물 중에는 탱고·탁구·볼링·등산 같은 운동 동호회나 연극·뮤지컬·영화 같은 관람 동호회 혹은 독서 토론·에세이 쓰기·낭독회 같은 독서 동호회 등을 두세 개씩 하는 열정 부자들도 많다. 드라마 아닌 현실 속 사람들 또한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유대감을 형성한다.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자신이 소속된 모임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되길 바란다. 이러한 지속적인 관계 맺기를 위해서는 구성원들 간에 합의된 모임 규칙이 필요하다.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와 각자의 열망이 담긴 모임 규칙은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지혜다.
1852년 11월 11일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1759~1789)을 제향하기 위해 만든 녹동정사에서 다음과 같은 일들을 하기로 약조하였다. (……)
一. 공사원(公事員) 1명과 유사 2명을 선출하는 일, 공사원은 2년의 임기로 한다. 유사는 1년의 임기로 하되, 보자[寶上]를 혹시라도 다 받아내지 못했을 경우에는 유임한다. (……)
一. 3년마다 사람을 추천하여 가입시키는 일, 세 번 참여한 사람은 바로 명부에 기록하고, 2번 참여한 사람은 권점을 쳐서 참여시키되 연한은 25세로 한다. 회원이 30명 미만일 때는 천거하지 않는다. (……)
一. 나이 순서로 자리에 앉되, 오직 당상관에 이른 사람은 나이에 구애받지 않을 것. 유사는 별도로 앉는다. 건너편에 피하여 앉는 자는 유사의 아래에 앉힐 것이니, 나이가 비록 많더라도 유사의 위에 앉힐 수는 없다. (……)
『괴담입향시일기(槐潭入享時日記)』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괴담입향시일기』〉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괴담입향시일기』는 1852년 11월 11일 괴담(槐潭) 배상열(裵相說, 1759∼1789)의 신주를 ‘녹동정사’에 봉안할 때까지의 과정과 규약 및 처벌 조항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이 일기에는 녹동정사 건립의 실무를 담당할 임원을 선출하고 그들의 임기에 관한 조항이 기록 되어있다. 향교나 서원에서 일하는 공사원은 1명이 2년 동안, 모임의 경리·연락·문서 작성 등의 업무를 하는 유사는 2명이 1년 동안 맡게 된다. 단, 빌려준 곡식의 이자를 다 받지 못한 유사는 연임한다는 규정을 두었다.
〈녹동서원〉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모임의 자리 배치에 관한 조항이 인상적이다. 벽을 등지고 출입문을 바라볼 수 있는 자리나 경치가 좋고 시야가 탁 트인 가운데 자리가 상석으로 여겨지는데, 연장자거나 당상관에 오른 고위직의 회원은 상석에 앉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신규 회원 모집 방식이 흥미롭다. 회원 추천제는 기존 회원의 추천을 통해 신규 회원을 모집하는 시스템이다. 기존 회원이 신규 회원을 보증함으로써 신규 회원에 대한 긍정적인 후광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다른 회원들은 신규 회원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식하며 그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지니게 된다. 이는 궁극적으로 회원들끼리의 결속력을 강화하여 모임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다.
녹동정사에서는 3년마다 기존 회원의 추천을 받아 신규 회원을 가입시키는데, 세 번 참여한 사람은 명부에 기록했다. 이는 지속적인 참여가 회원의 중요한 덕목임을 말해준다. 회원이 30명 미만일 때는 새로운 회원을 추천하지 않는다는 규정을 두었는데, 이는 조직의 규모를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회원 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이러한 방식은 안정적인 모임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성곡동회 회원이 되고 싶은 노상추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카 정엽(珽燁)과 성곡동회(省谷洞會)에 갔다. 이왕 고향에 내려왔으니 이번 기회에 성곡동의 계 좌목(座目)에 이름을 올리고자 한 것이었다. 동사(洞舍)에는 상존위 조명여(趙命汝), 박지원(朴之源), 도완모(都完謨)가 모여 있었다. 노상추가 다른 계원들은 언제 오느냐고 묻자 다른 계원들은 오지 않을 것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 계모임은 아무래도 파투 난 듯하다.
낭패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 노상추에게 인척 정유건(鄭惟健)과 정유경(鄭惟儆) 형제가 와서는 다른 계원들이 노상추가 계에 들어오는 것을 꺼린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래서 계원인 김이옥(金理玉), 김수옥(金粹玉), 윤형로(尹衡老)가 계모임에 오지 않은 것이었다. 두 김씨는 노상추가 온다는 소리를 듣고 집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고, 윤형로는 들에 나가버렸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리 추가로 계원을 받지 말자고 뜻을 모아 결정했다고 한다.
노상추는 어이가 없었다. 부친 노철과 형 노상식이 이미 50년 전에 계에 이름을 올렸고, 노상추도 계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지만 29년 전에 상존위를 역임했다. 그리고 노상추의 역할을 조카 정엽이 대신한 것도 28년에 이른다. 노상추보다도 늦게 계에 들어온 사람들이 감히 노상추가 계에 이름을 올리고 말고를 결정하다니 참으로 해괴한 일이다.
노상추(盧尙樞),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를 재구성하여 쓰다.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노상추는 조카 정엽과 함께 성곡동회에 참석했지만, 모임 장소에는 세 사람만 있었다. 몇몇 회원들이 불참하여 그날의 모임은 무산되었다. 뒤늦게 노상추는 자신이 성곡동회 회원이 되는 것을 반대한 사람들이 추가 회원을 받지 말자고 뜻을 모으고, 그 결정을 관철하기 위해 단체로 모임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노상추의 아버지와 형은 50년 전부터 성곡동회의 회원으로 활동해 왔고, 노상추 자신도 이름만 올라가지 않았을 뿐 성곡동회를 위해 노력해 왔는데, 자신보다 늦게 온 사람들로부터 따돌림당한 사실이 어이없었다.
모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회원 간의 합의가 매우 중요하다. 기존 회원들이 반대하는 인물이 모임에 들어오게 되면, 회원들 간의 불화가 발생할 수 있으며, 이는 모임의 지속적인 유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거에 성곡동회의 일원이었던 노상추네 집안이라 하더라도, 현재 그 모임을 주도하는 세력이 사회경제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면, 여론은 그들을 따를 수밖에 없다. 모임의 목적과 방향에 부합하는 인물을 영입하고자 한 회원들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명분 없는 집단 따돌림은 폭력이다.
- (……)
- 이웃에게 우호 있게 지내지 못하는 사람.
- 쟁송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
- 언행이 패려 하고 악한 사람.
- 조약을 준수하지 않는 사람.
- (……)
이상은 상벌(上罰)로 퇴출시킨다.
『괴담입향시일기』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괴담입향시일기』에는 녹동정사에 등록된 회원들이 서로 지켜야 할 규범을 정하고, 이를 위반했을 때의 처벌 조항을 마련했다. 이 조항은 위반 행위의 정도에 따라 상벌(上罰), 중벌(中罰), 하벌(下罰)로 나누어 처벌했다. 특히 상벌의 경우, 가족과의 화목을 지키지 않거나 이웃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고립시켰다. 말과 행동이 거칠고 사나워 이웃과 종종 분란을 일으키며, 자신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 손해 보기를 싫어해 소송을 즐기는 사람이 어떻게 되었는지 김택룡 이야기를 들어보자.
1616년 3월 4일, 택룡은 동네의 여러 사람들을 모이게 하였다. 그 자리에서 남의각·남신각 형제와 그들의 아버지 남산곡이 동네를 능멸한 것과 그들이 택룡의 아우 김기룡을 고소하여 곤장을 맞게 한 죄를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택룡은 그들을 동네의 구성원 자격을 박탈[삭적(削迹)]하고 먹고 마시는 연회에도 참석 못 하게 하여 고립시키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처리를 동네 규약[동헌(洞憲)]에 의거 하여 명분을 내세우며 시행했다.
김택룡(金澤龍), 『조성당일기(操省堂日記)』를 재구성하여 쓰다.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김택룡은 동네 규약에 따라 남산곡과 그의 아들들에 대한 동네 구성원 자격을 박탈했다. 이는 그들이 동네 사람들을 업신여기고 깔보았으며, 김택룡의 동생을 고소하여 곤장을 맞게 했기 때문이다. 김택룡은 남산곡 부자에 대한 처분이 규약에 명시된 바에 따른 정당한 조치였음을 밝히며, 이들을 마을에서 고립시켰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을 것이다.
- (……)
- 하는 말이 긴요하지 않은 사람.
- 좌중에서 떠들고 시끄럽게 하는 사람.
- (……)
이상은 하벌(下罰)로 면전에서 꾸짖는다.
『괴담입향시일기』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공적 모임에서 가십을 퍼뜨리며 사담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쓸데없는 이야기로 분위기를 어지럽히고, 좌중을 시끄럽게 하며 자신들이 대화의 주도권을 쥐는 것을 즐긴다. 이들의 주도에 따라 대화가 진행되면 모임은 삼천포로 빠지고, 모임의 취지는 흐려진다. 나는 혹시 알맹이 없는 잡담으로 소중한 타인의 시간을 침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며, 노상추가 참석한 기로회 모습을 들여다본다.
계회가 거행될 때면 술과 음식을 차렸다. 하지만 늘 술이 문제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람이 많은 것이 노상추는 늘 못마땅했다. 그래서 근년에는 술 대신 흰 떡국을 차려서 대접하니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일이 없어져서 계회의 진행도 순조로웠다.
노상추, 『노상추일기』를 재구성하여 쓰다.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83세의 노상추는 기로회에 참석하기 위해 아들 둘과 함께 용화전에 갔다. 아침 식사 후 계회가 진행되었고, 이번에는 술 대신 떡국이 나왔다. 사실, 계회에서 술은 항상 문제였다. 술을 대접하면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노상추는 이제야 계회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만족스러웠다.
〈《이기룡 필 남지기로회도(李起龍 筆 南池耆老會圖)》〉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금주령 시행 중에도 몰래몰래 술을 마시던 우리, 계회에 술이 빠질 수 없다. 권별(權鼈)은 “오늘은 문중의 계회 날이었다.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였다”, “이봉이 이망(以望)의 집에서 계회를 열었는데, 크게 취하도록 술을 마셨다”, “기보·덕성 등 5~6명이 술을 가지고 초간에 갔다. 나 또한 술을 가지고 올라갔다. 저녁에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이곳으로 와서 취하도록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문중계를 행하였다”라고 『죽소부군일기(竹所府君日記)』에 (권별, 『죽소부군일기』를 재구성하여 쓰다.) 기록했다. 권별처럼 적당히 마시는 술은 모임의 분위기를 띄우고 웃음과 즐거움을 주지만 ‘적당히’ 애매하게 마신 술은 종종 말실수를 낳고 싸움을 일으킨다. 말 많고 탈 많은 술, 노상추가 참석한 계회에서 술 대신 떡국을 내 온 것은 현명한 대처였다.
배달 앱의 주문 내역, 즐겨 듣는 음악, 그리고 대출 중인 도서 목록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이듯, 내가 가입한 모임이 나를 말한다. 과거의 나는 독서 토론, 시·소설 창작, 시 낭독회, 학교 도서관 봉사회 등의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했다. 그때의 내 관심사는 ‘이야기’였고, 다양한 방식으로 내 이야기를 담고 풀어내며 활동했다.
현재 나는 간헐적으로 '미니멀 라이프'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 카페는 내가 추구하는 삶의 가치와 취향이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으면서,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라서 좋다. 자랑이나 험담, 정치, 종교, 광고 및 협찬, 이벤트와 공동구매 등 모임의 취지와 맞지 않는 '금지 글'에 대한 규정을 정하고 이를 준수하려는 카페 운영자와 회원들의 노력 덕분에 '미니멀 라이프'는 편안한 커뮤니티가 되었다.
복닥복닥한 세상이 갑갑해 혼자 있고 싶다가도 여럿이 함께 지지고 볶으며 살고 싶다. 그래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가지가지의 모임을 만든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규칙이 있고, 합의된 규칙은 우리를 안전하게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슬아슬하게 혹은 과감하게 선을 넘는다. 도로 위 중앙선 침범하듯, 타인의 삶에 훅 들어와 자기 멋대로 휘젓고 다니며 선 넘는 행동과 선 넘는 말을 한다. 《나의 해방일지》 속 ‘해방클럽’처럼 선을 지키는 모임에 가입하고 싶다. 그러면 김광계(金光繼) 일족들처럼 모두가 시인이 된 듯 행복하지 않을까?
오시가 되어 각자 가지고 온 음식과 술을 모아 다시 분배하고 둘러앉아 술잔을 나누며 강회(講會)를 열었다. 노래와 악기도 연주하였다. 모인 인원은 서른 명이었다. 김광계뿐만 아니라 모든 일가 친족들은 좋은 계절에 일가가 모여 집안의 일을 의논하며 친분을 나누니 모두 흡족하고 즐거워했다. 밤이 되자 보름달이 밝게 비추니 정이 더 깊어지고 흥취가 가득했다. 김령 재종숙이 먼저 4운 한 수를 짓자 앞다투어 또 시 한 수가 읊어졌다. 밤이 깊도록 자리가 파하질 않았다.
김광계, 『매원일기(梅園日記)』를 재구성하여 쓰다.
(출처: 스토리테마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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