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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을 구하지 못한 형제, 꾀병을 핑계로 타향에 머물며 식량 구할 법을 모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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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5년 을미년 설날, 도세순(都世純)과 그의 형 도세옹(都世雍)은 의흥(義興) 관아의 관노 권막동(權莫同) 집에서 새해를 맞았다. 새해이지만 흥겨운 일이 형제들에게는 없었다. 오히려 타향에 있는 형제는 쓸쓸할 따름이었다. 조금 있으니 친척인 의흥 관아의 현감 이대기(李大期)가 도세순 형제를 관아로 불렀다. 형제는 관아 안으로 들어갔다. 현감 이대기는 형제들에게 우선 떡과 과일, 술을 먹였다. 그리고는 조용히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의 곤궁한 사정을 생각해보니 참으로 딱하구나. 하지만 관아에 비축한 쌀이나 금전이 매우 적어 관아의 살림도 팍팍한데다가 주위가 모두 다급하구나.”
현감 이대기는 형제들에게 상 위에 있는 떡을 싸서 주었다. 형제들은 이대기의 말을 알아들었다. 사정상 양식이나 곡식의 종자를 형제들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다. 형제들은 물러나 권막동의 집으로 돌아왔다.
권막동의 집에 돌아오니 사방의 고을 사람들은 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흥에 겨워 떠들썩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제는 말 없이 방안에 쓸쓸히 앉아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세순의 형 도세옹이 한숨을 쉬며 도세순에게 말하였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왔건만 우리는 아무 것도 얻지 못했구나. 오늘 같은 정월 초하루 날에도 굶주리는 고민을 떨치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탄스럽구나.”
그리고는 데리고 온 집안 노비 연금(連金)에게 붓 두 자루를 주어 술과 떡으로 바꿔 오라 시켰다. 연금은 주인의 명을 받들고 붓을 팔기 위해 마을을 한 바퀴 다 돌았다. 그러나 붓을 팔지 못하고는 돌아왔다. 도세순 형제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하늘을 쳐다보며 애꿋게 노비만을 꾸짖었다.
형이 도세순에게 말하였다.
“헛되이 돌아가게 되니 여비와 양식만을 쓸 따름이구나. 그냥 돌아가는 것보다는 네가 병을 핑계 삼아 이곳에 머물며 집으로 돌아올 식량을 마련하는 것이 좋을 듯하구나.”
세순은 곧장 자리에 누워 다리에 병이 났다고 하며 끙끙 앓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순의 형은 관아로 들어가 현감에게 아뢰었다.
“동생은 다리에 병이 들어 걸을 수가 없습니다. 원컨대 이곳에 머물며 조리하다가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현감은 이를 허락하였다. 그리고는 다시 도세순을 불러 그 병이 어떠하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그믐날의 음식과 구운 고기를 도세순에게 주었다. 저녁에는 주인집(노비 권막동)에서 막걸리를 주어 형제는 그나마 설날의 흥취를 즐길 수 있었다.


설날 아침, 부임 1년차 수령의
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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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1년 1월 1일, 권문해는 이전 해 11월에 공주목사로 부임하여 약 두 달 만에 공주에서 새 해를 맞았다. 그는 이른 아침 객사(客舍)에 나아가 문안하고, 새 부임지에서 얼핏 떠오르는 생각을 시로 읊었다. 그는 자신을 여전히 객이라 느끼며 고향을 떠나 소식을 듣지 못하는 것에 대해 외로움과 안타까움을 토로하였다. 더불어 불혹을 훌쩍 지난 중년의 나이에 그간의 업적에 대한 회자와 늙어감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섣달 다해 매화 맺고 해는 그믐이라 내일 아침이면 360일의 시작이네 계룡산 봉우리에 눈 쌓이니 추위는 더해지고 금강에 얼음 깔려 있으니 물결은 일지 않네 충청도에 머물며 새해 맞는 객은 근심스레 고향 소식도 접하지 못하고 있네 일 년 동안 얻은 것이 무엇이던가 백발은 무성해지고 귀밑머리는 성글어졌네


새해 인사 하러온 부하관원에게 큰 그릇 술 다섯잔을 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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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1월 2일, 김종(金琮)은 어제와 달리 오늘은 집에서 사람들의 인사를 받았다. 아침에는 부하 관원인 민 구임(閔久任)이 찾아왔다. 김종은 먼저 큰 그릇으로 술 다섯 잔을 권하였다. 민 구임 역시 상사의 집에 왔기에 이를 거부하지 않고 술을 주는대로 다 마셨다. 그리고 김종은 민 구임과 아침을 함께 하였다. 그리고는 김종은 민 구임에게 새로 지은 단령(團領)을 내 보이며 입어 보라고 하였다. 민 구임은 김종의 선물에 깜짝 놀라며 단령을 입었다. 그리고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김종의 집을 나왔다.
이후 정경렴(鄭景濂)이 다시 김종의 집에 방문하였다. 그런데 그는 김종의 집에 인사차로 온 까닭도 있지만 일에 관해서 찾아왔다. 그는 자신이 하던 일과 또 자신이 관리하던 모든 관아의 물품을 후임자에게 넘기고, 자신이 관원으로 있을 때의 책임을 면하고자 하는 일을 김종에게 간청하였다. 그런 정경렴에게 김종은 다시 술 넉 잔을 권하고는 보냈다.


설날 권농교서에 심한 흉년을
걱정하는 임금의 시름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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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2년 새해가 밝았다. 1월 1일에 동부승지(同副承旨) 이후(李후)가 성첩(成貼)한 유지(有旨)가 내려왔다. 한 구절 한 구절마다 심한 흉년과 북관의 백성들의 굶주림을 생각하는 임금의 탄식과 슬픔이 전해져 온다.『해마다 세수(歲首)에 전례대로 권농(勸農)의 교서(敎書)를 내리며 한 글을 지어서 갖추니 탄식을 이길 수 있겠는가? 이미 한 해가 시작되었고 봄 농사도 멀지 않으니 그 권농의 정사(政事)를 뜻을 갖고 거행하라. 슬프다.
s 만 풀이 소생하는 시절에, 아! 백성들이 함께 소생하는가? 소생하지 못하는가? 생각이 이에 미침은 심한 흉년 때문이다. 더욱이 서북의 양도(兩道)가 거듭 굶주린 나머지 농사지을 양식과 종자(種子)는 어찌 한단 말인가? 근래에 북관(北關)의 장문(狀文)을 보니, 자고 먹는 문제를 어찌 느슨히 할 수 있겠는가? 나의 이러한 뜻을 체득(體得)하여 진심으로 거행하라.